[특별 기고] '김영란법' 시행 한 달…김영란 석좌교수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김영란 석좌교수님. 최근 교수님은 “더치페이 좋지 않나요”라고 하셨지요. 네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그걸 할 수 있는 모임을 없애서 소통과 지식의 교류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대학은 지적 암흑기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영란법은 ‘직무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 간의 금전적 거래와 제안을 불법화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에 꽃 한송이 달아 주는 게 범죄이며, 지도교수가 학생 논문심사를 위해 외부에서 온 교수에게 커피 한 잔을 줘도 안 된다고 합니다. 학생이 선생님께 캔커피를 드려도 신고 대상이라고 합니다. 위탁교육을 부탁한 최고경영자가 강의 교수를 만나는데 차 한 잔도 더치페이를 하라니 교수들을 오라 하지도 못합니다. 이게 당신이 꿈꾼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나라인가요.

국민권익위원회는 서울대가 국·공립 대학이 아니라며 교수들의 외부 강의료를 국립대 교수의 반 이하(시간당 최대 20만원)로 주라고 합니다.

김 교수님! 어떤 서울대 교수보다 김 교수님이 5배 많은 강사료를 받아야 할 이유가 납득이 갑니까. 최저임금은 들어 봤어도 최고 임금을, 그것도 소속기관에 따라 차등 제한하는 시장경제 나라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교수님은 “거절의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거절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제안에 재갈을 물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기업이 인식하지 못하는 새로운 과제나 연구 데이터의 활용을 교수가 먼저 요청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안을 먼저 하면 ‘금품 요구’라는 것입니다.

김 교수님은 대학원 지도 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해주고, 해외 학회 참가비를 마련해주는 일을 하시나요. 저 같은 보통의 교수들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산학협력 프로젝트는 교수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학생의 연구와 생계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학회와 포럼 등은 대부분 기업의 후원을 받아 개최됩니다.

그런데 그런 행사를 위해 교수가 기업 후원을 먼저 요청하면 범죄라고 합니다. 학생과 기업, 그리고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교수의 강의와 산학 과제를 모두 우회적 뇌물로 간주한 이 법 아래서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영란법을 현대판 분서갱유이자 지식사회에 대한 테러라고 한다면 극단적인 견해입니까.

혹시 김 교수님께서는 권익위가 배포한 ‘교원과외활동 사전신고서’를 작성해 보셨는지요. 교육, 홍보, 토론회, 세미나, 공청회, 회의, 심사, 평가회, 언론 기고, 방송 출연 등 모든 외부 행사에 대해 사전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에 대해서 사전에 주제와 사유를 적어 내고 사례금과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을 적어 내야 합니다. 요청자의 개인정보는 물론 얼마짜리 밥을 주느냐고 물어보고 신고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교수님은 김영란법 대상자들이 특권층이라 일반 국민에 비해 더 많은 속박과 견제를 받고 살아야 한다고 믿으십니까. 박사학위를 받고 일용직 근로자 임금 수준의 강사료를 받는 시간강사들에겐 정부 고위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명문대 석좌교수에 임용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으로 보일 것입니다. 학문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석학들에게 주는 존경의 타이틀을 해외에서는 석좌교수라고 부릅니다. 저는 김 교수님의 사례를 비난할 의도가 아니라 특권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김 교수님은 “내 제안과 다른 ‘직무 관련성’과 국회가 확대한 적용 대상의 문제를 갖고 시비를 거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표(票)라면 영혼도 파는 국회와 영혼 없는 각료들 그리고 철학적 고민과 경제적 식견도 없이 여론에 따라 대부분의 규제를 합헌이라고 판결하는 사법부를 잘 아신다면 그간 김 교수님의 침묵은 온당치 못했습니다. 저도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쌍수를 들어 지지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도 다른 나라에서 정상으로 간주되는 자유는 누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호소를 김 교수님께 드리는 이유는 국회와 권익위가 해석을 두고 다투는 것만으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님만이 건설적인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병태 < KAIST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