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엔지니어링 기술 없이 건설·플랜트 미래 없다
국내 엔지니어링 기술기반산업이 대외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처해 있다. 건설, 플랜트, 조선해양 분야의 설계·사업관리 등 엔지니어링 기술이 핵심역량인 EPC(설계·조달·공사) 산업의 성공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엔지니어링 기술의 고도화 없이 시공위주 사업으로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EPC 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3고(高) 현상(고유가·엔고·고성장률)이란 대외여건 호조와 사업주의 공사위험을 대신 떠맡는 일괄도급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시공 및 외형 위주 사업에 머물러 산업구조를 선진국형으로 고도화하지 못한 데다 3고 현상이 사라지면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국내 기업들은 기자재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현지 인력을 활용해 국내 고용창출 효과도 크지 않다. 발주국은 자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지에 사업수행회사 설립을 요구하고, 자국 기자재 및 공사 부문 활용을 의무화하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공 위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은 기존 기술에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등 신기술을 접목하는 융합형 프로젝트 엔지니어링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조원의 대형프로젝트는 엔지니어링 기술을 토대로 융복합화가 이뤄지고 있다.

엔지니어링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글로벌 변화 추세에 맞춰 대응해 나가야 한다. 첫째, 국내 엔지니어링산업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늘어나면서 발주자들은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통합 사업관리역량을 요구한다. 기본설계, 프로젝트 관리 컨설팅(PMC) 등 고급 엔지니어링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장에 맞게 입찰·낙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사업자 선정 시 기술배점을 높이고 선진국과 같은 기술력 평가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석·박사급 인력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 필수다. 지난해 기준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라 신고된 기술자는 10만9242명, 개별사업법에 따른 건설기술자는 75만962명이다. 하지만 기본설계 등을 담당할 고급 기술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현행 기술자관리제도는 기술자격 위주의 등급분류로 박사 학위를 가지고 30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도 초급기술자로 분류되는 문제점이 있다.

셋째, 다른 산업과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융복합형 신성장동력사업을 개발해야 한다. 그린빌딩, 자기부상열차, 신재생에너지, 유비쿼터스 통신설비 등을 도입하는 친환경 ‘스마트 시티’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정부와 사업자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높여야 한다. 국내 EPC산업의 주력 업종인 화공·발전 플랜트를 보면 터빈, 보일러, 회전기기 등 핵심 기자재는 GE, 지멘스 등 해외 기업에서 수입하고 있다. 소재 및 기자재산업을 육성해 수입의존적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다섯째, 민관이 참여하는 패키지형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개발도상국의 급성장, 해외 인프라시장의 민영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설립 등으로 민관합동(PPP)형 프로젝트가 늘어날 전망이다. 해외 인프라개발 경험을 활용하고 설계, 공사, 운영, 자금지원 등을 일괄 패키지화하는 민관공동진출 사업모델을 정부 주도로 추진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해야 한다.

여섯째, 기술인력 육성을 위한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은 기술자를 우대함으로써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기술자가 존경받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엔지니어링 기술의 고도화 없이는 건설, 플랜트, 해양산업 등 EPC산업의 미래도 없다. 제조업 경쟁력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표적 지식기반 산업인 엔지니어링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완 <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