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쿼바디스' 노동개혁
노동개혁이 교착 상태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파견근로법 등 4대 입법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는 노동계의 파업으로 소강 국면이다. 노동개혁은 공공·금융·교육과 함께 정부가 역량을 모아 추진해 온 4대 개혁의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장년층과 청년층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시장 상황에 대응 가능한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이 골자다.

노동계 반발로 교착상태

지난해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주도로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질 때만 해도 노동개혁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노·사·정 창구 역할을 거부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라는 정부의 양대 지침에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면서다. 노동계는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을 썼지만 기업체 노무 담당자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법원 판례로 굳어지는 사안인데 왜 반발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업무에 복귀한 노조 간부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4·13 총선이 가져온 여소야대도 교착상태를 심화한 요인이다. 범(汎)노동계 인사 17명의 국회 입성으로 4대 입법 가능성은 희박해 졌다. 정부가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확산으로 돌아선 배경이기도 하다. 입법 없이 추진 가능한 몇 안 되는 분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과연봉제 또한 코레일·금융·서울지하철 등 공공부문 노조들이 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정치적 파업이어서 불법 소지가 다분한 데도 말이다.

그동안 노동개혁은 ‘노·사·정 합의→정치권(특히 야당) 압박→입법→시행→일자리 창출’이라는 연결고리를 전제로 이뤄져 왔다.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 걸린 ‘고용률 70%라고 쓰고 사회적 대화라 읽자’라는 액자는 웅변적으로 이를 말해 준다. 연결고리는 이어지면 힘을 쓰지만 분리되면 헛돈다. 사회적 대화(노·사·정 대타협)가 야당 반대 등을 무릅쓰고 입법으로 완성해야 하는 노동개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김대환 전 노사정위원장은 “대타협 자체가 입법을 압박하는 동력”이라고 했다. 노동계가 대타협을 부정한 바로 그 순간 노동개혁 추진동력은 고갈되는 구조였던 셈이다. 게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노동계 출신의 홍영표 위원장 등 7명의 범노동계 인사가 포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입법은 기대난이다.

노동개혁 새판을 짜라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138개국 중 26위로 평가했다. 노사 간 협력(135위) 등 노동 분야가 선방했다면 순위는 훨씬 올랐을 거다. 노동 분야의 선진성은 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업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적기 대응을 못한 해운·조선업계, 저가 경쟁 등에 속수무책이던 철강업계는 구조조정에 내몰려 있다. 파업을 구조조정의 바람막이로 삼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가경쟁력은 순위 하락에 그치지만 기업은 소멸에 이른다.

출발선으로 되돌아보면 노동개혁은 좋은 일자리 창출이다. 좋은 일터를 많이 만들고, 제대로 유지하는 거다. 새판 짜기가 불가피해 보이는 시점이다. 기준은 간단하다. 노동생산성과 지속발전 가능성이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