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명량해전의 기적' 필요한 플랫폼 전쟁
2014년 구글이 스마트 온도조절기 회사 네스트를 3조5000억원에 인수하자, 세계적으로 사물인터넷(IoT) 바람이 불었다. 네스트는 사물인터넷 응용 분야의 하나인 스마트홈에서 허브와 킬러 앱(응용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모델 사례가 됐다. 네스트가 스마트홈의 선두주자가 되면 전 세계 안방까지 구글이 차지할 상황인 것이다. 집안의 모든 가전 제품은 구글의 네스트 온도조절기와 연동되고, 집 안팎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는 구글에 쌓인다.

네스트의 스마트 온도조절기 등장으로 TV나 냉장고, 셋톱박스가 스마트홈의 허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나는 LG전자와 삼성전자 임직원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마트홈 분야에 스마트 온도조절기를 앞세운 플랫폼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애플 출신 70명이 세운 회사 네스트, 애플의 홈킷 프로토콜에 기반을 둔 캐나다 토론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에코비의 스마트 온도조절기, 음성명령 인식 서비스를 앞세운 아마존의 스마트홈 스피커가 그 삼총사다. 최근 구글은 구글 홈을 발표, 아마존 에코에 대항하고 있다. 이에 대비하는 한국 주요 회사의 동향은 어떤가.

LG전자는 구글의 네스트와는 ‘워크 위드 네스트(Work with Nest)’에 참여, 구글 협력회사의 하나로 줄을 선 상태다. 또 아마존 에코의 음성명령 인식 인공지능 서비스인 알렉사와 연동되는 스마트홈 스피커를 출시한 것으로 예상돼 LG전자는 음성명령 인식 인공지능 소프트웨어(SW)를 직접 개발하는 전략은 포기한 듯하다. 외국 스마트홈 플랫폼 회사와 맞붙는 전략은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홈 분야는 팰로앨토에 있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2000억원에 인수해 구글의 네스트, 애플의 홈킷에 대항하고 있다. 결제 분야는 루프페이를 2000억원에 인수해 애플페이에 맞불을 놓았다. 음성명령 인식 인공지능 SW 플랫폼 분야는 ‘에스 보이스’(S-Voice)를 자체 개발하다가 최근 viv.AI를 인수해 구글 홈, 아마존 에코, 애플 시리에 대항하고 있다. 인수가는 미공개다.

이렇게 삼성전자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플랫폼에 적어도 도전장이라도 내밀고 있다. 2015년 가을, 삼성전자가 전반전에 3-0 정도로 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어떤 경영 매거진에 쓴 일이 있다. 2015년 11월 프리미어12 세계 야구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 3-0으로 지다가 9회에 4-3으로 짜릿하게 역전승한 일이 있다. 3-0으로 지고 있어도 얼마든지 역전은 가능하다. 삼성전자에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12척으로 수백척의 일본을 물리치려고 하는 상황인 것 같다.

삼성에 이순신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은 칭찬 같지만 칭찬이 아니기도 하다. 명량해전에서의 기적을 기다리는 형국이니까. 어쨌든 올해 갤럭시노트7이 잘된다고 할 때, 3-0으로 지다가 한 골 만회했다 싶었다. 3-1 정도. 그런데 노트7 폭발 및 단종으로 자살골을 한 골 넣은 정도로 느껴진다. 4-1로 지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 핀테크, 인공지능 쪽에 플랫폼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타이젠(Tizen)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운영체제(OS)의 노림수로 갖고 시장 반전을 노리고 있다. 미국 기업들로서는 이런 삼성전자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한국민은 미운정 고운정 다 든 삼성전자를 밉지만 응원해야 할 상황이라고 본다. 삼성전자는 미국 기업들과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업들이 전쟁을 대신 치르는 시대이고, 그 전쟁의 핵심은 사실 플랫폼이다. 임진왜란에서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쳐 왜군과 싸웠듯이, 한국 대기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중견기업이 플랫폼 전쟁에서 외국 기업과 싸우는 시대다.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