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논점과 관점] 노벨상 안 받는 게 낫다
1968년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독일식 기능 교육을 연상시킨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독일 교육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 공업고가 늘어나고 이들에 특별 대우를 한 것도 이런 정신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시작한 대학의 양적 팽창은 이 같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전국 기능전문대학들은 차츰 종합대학교로 개명했다. 대학 재학생은 지금 300만명이 넘고 대학진학률은 70%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0년 진학률은 33.9%였다. 불과 26년 만에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이처럼 이른 시간 내 대학이 급성장한 건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조선시대 양반 인구의 증가율보다 수십 곱절 빠르다. 대학 교수도 급증했다. 36년 전 1만4000여명이던 대학 교수(일반대 기준)는 지금 7만2000명을 넘는다.

대학에 능률과 실질 기풍 실종

학생이 증가하고 교수가 늘면서 한국 대학은 기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겉치레와 형식주의만 판을 친다. 사회가 대학에 깊이 있는 학문 수준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부 대학 교수들 사이에 갖가지 카르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런 교수들은 각종 학회나 모임 등을 통해 서로의 성(城)을 쌓는다. 카르텔은 으레 신념과 양심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게 먼저다.

정부 용역과제에서도 이런 카르텔은 유감없이 힘을 발휘한다. 정부 과제를 교수들끼리 만들고 재단하는 사례도 있다. 용역을 따오기 위한 전담 교수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결과보고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러다 보니 각종 연구비를 N분의 1로 나누는 것도 흔한 일이 돼버렸다. 이런 데 끼지 못하는 교수들은 연구용역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카르텔은 물론 철저하게 보호되고 구성원들에겐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혁신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해외에서 수입한 지식을 전하는 학문 오퍼상도 많다. 쇼윈도 사회, 속물근성 사회의 전형이다. 선거철이면 폴리페서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구조다.

교수 카르텔이 혁신 의욕 막아

이런 구도에선 양궁이나 여자 골프와 같은 세계 1등은 나오기 힘들다. 오히려 연구 실적이나 기존의 교수 기법 등에 만족하면서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는 교수가 많다.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그 결실은 찾기 힘들다. 그 많은 투자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 상황이다. 그런 차원에서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허영일 수밖에 없다. 겉치레 사회에서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한국이 평화스럽게 된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북핵으로 위기감만 높아졌다. 한국 과학자 한 명이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과학 강국이 되지 않을 것도 당연하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두 분야의 노벨상이 나중에 다른 부담을 가져올 수도 있다. 노벨상은 당분간 잊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니 받지 말아야 한다. 먼저 ‘능률과 실질’의 기풍이 확산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