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주가신호에 민감한 경제시스템 구축해야
최근 한진해운 사태를 주식시장 관점에서 보면 평범해 뵈지만 심각하게 재고해 볼 만한 사실을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 4월22일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에 관리절차를 신청했다. 8월31일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을 전혀 몰랐던 투자자들은 폭락한 주가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한진해운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조양호 회장을 위시해 한진해운 경영진과 산업은행 등 정부기관일 뿐이었다. 한진해운에 투자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채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일을 당했던 셈이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한진해운의 대주주는 대한항공으로, 지분의 33.2%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나머지 절반을 훨씬 넘는 66.8%를 가진 주주들은 일방적으로 경영진의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엄청난 손실을 보아도 좋은 것인가. 한진해운의 경우는 상황이 급박했고, 또 다른 선택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결정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이 예를 든 것은 한국 기업들에서 이처럼 일방통행적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투자자들이 회사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주가 원하는 방향과는 매우 동떨어진 결정이 빈번히 내려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 주식의 전반적인 저평가 현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주주들이 원하는 바가 증시의 주가를 통해 즉각적으로 투영된다. 또 이 가격을 통해 해당 회사나 업종의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체계가 작동하므로 회사는 주주들의 재산보호를 위해 기민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한진해운이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 회사라고 가정해보자. 한진해운은 2011년 초 주가가 최고치인 3만8879원을 기록한 뒤 업황 악화로 연일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회사의 업황 및 향후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앞다퉈 내놓았을 것이다. 해운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주가가 20% 이상 하락한다면 대부분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무언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강력한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CEO는 아마도 불필요한 경비절감, 인력감축, 일부 선대 매각 및 항만시설 매각 등의 조치를 내놓았을 것이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업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사회가 열려, 회사가 매각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M&A)되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해 주주 이익을 보호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기업들은 많은 경우 주가가 절반 수준 정도로 하락하면 자동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경쟁력 있는 회사로 재탄생한다.

우리는 어떤가. 회사가 위험하다는 시그널을 증시가 보내는데도 경영진은 정책금융 칼자루를 쥔 정부만 바라볼 뿐 주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주가는 2011년도 최고치인 3만8879원에서 97.5%나 폭락해 종잇장 수준인 1000원까지 내려왔다. 현재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하고 있는 대우조선 또한 이런 가격 시그널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결과다. 따지고 보면 1997년 말의 외환위기 또한 외환시장이 내는 경고음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경제체제가 빚어낸 사고였다.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정책금융은 점차 축소하는 한편 금융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 시그널이 회사 경영에 잘 전달되게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하태형 < 수원대 교수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