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논점과 관점] 김영란법과 관존민비 청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드디어 오늘부터 시행이다. 켜켜이 쌓인 부패를 청산하고 청렴사회의 첫발을 뗄지, 또 다른 편법·탈법 잔치가 될지는 미지수다. 김영란법은 법의 정합성, 구체성, 형평성 등에서 결함 투성이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초 예상(본지 6월21일자 A38면 ‘김영란법 완화? 기대 마시라’)대로 한 줄도 고쳐지지 않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잘난 사람들이 공짜 접대받는 꼴’을 국민 다수가 더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법인카드로 먹는 소위 ‘최후의 만찬’이나 ‘조기 망년회’가 성행했다고 한다. 그런 자리의 대화는 대개 ‘시범케이스가 되지 말자’로 결론 난다. 신고포상금을 노린 약 4만명의 ‘란파라치’가 어디서 뜰지 알 수 없다. 모두가 몸부터 사리고 본다.

경제충격 감수한 행동교정 실험

이 때문에 정부 당국과 경제 전문가들은 당장 내수 위축을 염려한다. 골프장, 호텔, 고급음식점 등은 걱정이 태산이다. 종업원 일자리도 문제다. ‘관료 천국’ 일본에서 골프 접대비 손비처리 폐지 이후 골프장 부도 사태, 회원권값 20분의 1 토막의 선례가 있다. 일각에선 ‘최후의 만찬’으로 앞당겨 먹은 3분기는 성장 서프라이즈, ‘저녁이 있는 삶’이 될 4분기는 ‘성장절벽’을 점친다. 하지만 작년 국내총생산(GDP)이 1558조원이다. 연간 9조원의 접대비에 좌우될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은 여전히 낯설다. 금지사항을 시시콜콜 명시한 성문법에 익숙한데 김영란법은 불문법에 가깝다.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의 포괄적 금지라는 법 취지와 허술한 법 조항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국민권익위원회의 207쪽 사례집과 약 1600건의 질의응답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백과사전만큼 방대한 모범답안을 낸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호한 법 조항 탓에 판사의 재량 여지가 많다. 판례가 축적돼야만 잠잠해질 소동이다. 덕분에 변호사업계는 ‘큰 장’이 섰다. 지금 와서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꼼수와 잔머리를 탓한들 소용없다. 시행 후 문제점 보완엔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갑질·마당발 설 자리 없어야

말 많고 탈 많은 김영란법이지만 분명 얻는 것도 많다. 온갖 학연·지연을 엮어 대는 마당발들이 개점휴업이 될 공산이 크다. 누구 말처럼 ‘맨입’에 되겠나. 그동안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의 이면에는 배타적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가 엄연히 존재했다. 끼리끼리 해먹었다는 얘기다. 실력대로 입찰, 납품, 수주, 인사 등이 이뤄지면 거래비용도 확 줄고 한결 공정해질 것이다. 갑질도 힘들어진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갑(甲)에게 을(乙)이 알아서 기려고 해도 길 방법이 별로 없다. 군대 보직, 수술·입원 순서, 학교 출석·성적 등도 ‘규정대로’다.

포터 스튜어트 미국 연방대법관이 포르노를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안다”고 했듯이, 김영란법 저촉 여부는 찜찜해 하는 본인이 잘 안다. 이제 한국은 연고 사회에서 투명 사회로 전환하는 기로에 섰다. 공직자 등 400만명을 4600만명이 지켜본다고 상상해 보라. 400만명이 달라지면 4600만명은 절로 따라온다. 한국인 행동교정 실험인 셈이다. 궁극적으로는 갑질과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전근대적 적폐와도 결별할 때다. 고스톱 보신탕이 점차 사라지듯 부패도 사라지길 기대한다. 이를 자율이 아닌 법으로 강제하는 게 유감일 뿐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