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뉴욕항 배회하는 한진마이애미호
한진마이애미호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에도 미국 뉴욕항에 들어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뉴욕항에 입항하는 모든 상선은 맨해튼 남단의 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현수교인 베이원 브리지를 통과해야 한다.

마이애미호가 다리 아래를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서는 뉴욕항에서 내린 만큼의 짐을 다시 실어야 한다. 배가 수면 아래로 충분히 내려가지 않으면 가벼워진 배의 머리 부분이 다리 하단에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해운에 어떤 기업도 짐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한진해운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뒤 이 같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마련했다는 ‘플랜B’에는 없는 상황이다.

놀랍도록 대책 없는 한진 사태

미국 뉴저지 파산법원의 스테이 오더(압류 금지) 결정 후 1주일이 지났지만 미국에 짐을 내린 한진해운 배는 단 한 척에 불과하다. 법원의 결정으로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파산보호 신청 이후 한진해운과의 거래에서 외상은 사라졌다. 한진해운 미주법인 측은 “배가 언제쯤 뉴욕항에 들어올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혹시 돈을 보내준다는 얘기는 없던가요”라고 되물었다. 현장에서는 “회사가 무너졌는데 마지막 컨테이너 하나까지 차질없이 처리한 뒤 철수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의 ‘대책 없는’ 파산 결정이 미국 물류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정말 놀라울 따름이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진해운 사태를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5일간의 추석 연휴를 즐기는 동안 한진해운과 함께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또 다른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였다. 갤럭시노트7에 대한 공식 리콜 명령이 내려진 지난 15일 삼성전자 미주법인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온 최선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기업보다 못한 정부의 일처리

리콜을 위해서는 문제가 된 배터리를 대체할 제품의 사용 승인을 연방정부 기관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로부터 받아야 했다. 삼성은 공식 리콜에 따른 10억달러 비용 부담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제품 교환을 끝내고 정상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일본계 컨설팅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이렇게 빨리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할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6년 일본 소니가 바이오 노트북의 배터리 폭발사고에 대한 늑장 대처로 시장을 잃어버린 것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한진해운, 두 회사 미주법인 직원들은 모두 이달 초 노동절 연휴기간 내내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결과의 차이는 컨트롤타워에서 비롯됐다. 현장 파악부터 사태 해결까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시스템이 작동하느냐가 핵심이었다.

삼성전자는 원인을 파악해 약 100만개에 달하는 교환 제품을 만들고, CPSC와 협의해 사용 승인을 받고, 언론 발표문 준비와 통신회사와의 마케팅 계획 협의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한진해운은 연말까지 가더라도 전 세계 공해상에 떠돌고 있는 14억달러어치(약 15조원)의 화물을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특정 기업보다 못하다는 비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다름 아닌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탄식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