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의 사드 보복은 가면을 쓴 축복
정부의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국내외가 소란하다. 사드가 배치될 경북 성주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반대 집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같은 외부 세력도 가세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사드 관련 괴담이 급속히 유포되면서 또 다른 광우병 사태가 빚어지는 듯하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여섯 명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 공산당 관계자와 면담할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일부 야당 의원들이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의 ‘사드 반대 청원’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5일까지 약 7만명이 서명에 동참했고, 10만명이 서명하면 백악관은 이에 대한 답변을 검토해야 한다.

당초부터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중국은 사드 배치가 공표되자 즉각 거세게 비난했다. 지난달 9일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그 어떤 변명도 무력하다”고 했다. 같은 날 양위쥔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중국의 “전략적 안전과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10일 논평에서 “중국은 정치·경제·무역·관광·문화·군사·외교 등 여러 영역에서 한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사용할 수단은 아주 많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중국은 지한파 학자 등을 동원해 연일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한국과 한국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과 비방을 하고 있다. “한국 지도자는 소탐대실로 나라를 최악의 상태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라”며 “사드 배치는 한국을 불태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엄포도 덧붙였다. 또 인민일보는 한국의 전직 관료와 현직 대학교수를 동원해 한국을 비난하는 이이제이의 계책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연예인의 중국 드라마 출연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외국 드라마 방영 횟수를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이 보복 조치의 일환이라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중국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설득력이 없다. 의심되는 것은 오키나와에서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 바깥으로 미국을 몰아낸다는 중국의 대전략이다. 이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에 필수적인 창바이산 근처의 둥펑-21 중거리 미사일이 사드의 AN/TPY-2 레이더 시스템 때문에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는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이유야 어떻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 수준을 넘어 더 강력한 무역 제한 등의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 중국의 연성권력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연성권력은 가치와 선호의 자발적인 수용에 기초한 힘이다. 누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21세기판 조공제도를 건설하려는 듯이 보이는 중국을 선뜻 받아들일까.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진정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중국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무역은 어차피 호혜적이다. 중국도 무역 제한의 피해를 보게 된다. 설사 보복을 감행하더라도 이는 재앙의 가면을 쓴 축복일 수 있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로 어려움을 겪은 일본 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효율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였다. 재정통화정책의 실패로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를 겪고 있지만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경쟁력이 오랜 불황 속에서도 그나마 일본 경제를 지탱했다.

그동안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우리 산업도 오랫동안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중국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경제적 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의 경제적 제재는 1960~1980년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던 정신을 되살리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