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엊그제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모회사의 주식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에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을 비롯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의무 선임,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 골자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소위 경제민주화가 부활할 태세다.

사실 새로운 법안은 아니다. 2013년 7월 법무부는 이 법안과 골자가 같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었다. 경제민주화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는 정부 입법이었다. 그러나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에서 주식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좌파적 입법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우윤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가 자동 폐기됐고, 이번에 그 내용을 그대로 살린 법안이 또 발의된 것이다.

이 법안은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외국계 투기자본에 안방을 내줄 거라는 우려도 퍼져가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상장사 대부분과 비상장사 6000곳 이상이 잠재적 소송 대상이 된다는 분석(한국상장사협의회)이 나올 정도다.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들이 이를 악용하면 국내 기업들은 심각한 경영 위험에 빠질 공산이 크다. 또 2인 이상의 이사 선임을 할 때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는 집중투표제는 ‘1주 1의결권’이라는 주식회사의 다수결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역시 외국계 헤지펀드들에 길을 열어주는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후보자 1인은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것은 이미 독일에서조차 사실상 무늬만 남은 근로자 사외이사 추천권을 도입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기업 경영권이 국제 투기 자본에 노출돼 있어 세계가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거꾸로다. 대주주의 경영권과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 의회 권력의 횡포다. 1주에 다수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면 차등의결권도 허용해야 한다. 경제를 살리자고 하면서 반기업 반시장을 외치고 있다. 경제민주화 소동이 또 벌어질 판이다. 기업 경영마저도 정치판으로 바꿀 작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