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브렉시트 반다자주의, 공멸에 이르는 길
국제기구 설립을 통해 세계평화를 유지·관리하려는 인류의 열망이 유엔과 브레턴우즈 다자체제를 탄생시키는 데는 1, 2차 세계대전과 세계대공황의 참화가 필요했다. 이런 다자주의는 동서냉전으로 잘 작동하지 않다가, 워싱턴 컨센서스의 형성과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 유럽연합(EU)을 거치면서 다자적 거버넌스 체제가 자리 잡았다.

이토록 어렵게 이룩한 다자주의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른 미국식 규제완화 확산에 있고, 다자주의는 그 기반을 제공했음이 지적돼왔다. WTO 뉴라운드협상(DDA)은 사실상 실패했음이 선언됐다. 미국을 비롯한 아·태지역 경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란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돌파구를 마련했으나, 미 대선정국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영국이 국민투표로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것도 유럽판 반(反)다자주의 경향을 반영한다.

다자주의의 실패는 모두의 비용으로 귀결된다. TPP가 실패하면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아시아지역 ‘메가 FTA’의 촉진 동력도 반감된다. 브렉시트는 영국에서 50만개의 일자리를 2년 내 사라지게 하고, 국내총생산(GDP)의 3.6%를 위축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반다자주의 정서가 각국 정치를 지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장 생계가 걸려 있는 서민들은 자기 나라의 장기적 국익에는 둔감하다. 이들에게 TPP는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시키는 주범이고, EU 체제의 자유로운 인력이동 원칙이 이민자를 양산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논리는 강력하다. 테러리즘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 다자체제는 무기력하다는 설명도 솔깃하다. 눈앞에 보이지는 않는 모두의 이익을 설명하는 논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위협에 호소하는 정치 앞에서 무기력하다. 브렉시트 정치는 근린궁핍화 정책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킬 것이다. 중국, 멕시코 등 주요 교역국 수출품에 최고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공약은 또 어떤 부작용을 세계경제에 안길 것인가?

한국은 어떤가? 2014년 말 쌀 관세화 여부와 2008년 6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 여부를 국민투표로 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는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정부가 중요한 대외현안을 대중정치에 맡겼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한국은 무역보복을 당하고 있을 것이고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민감한 대외현안을 국내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하나하나 해결해온 대한민국이 새삼 자랑스럽다.

브레턴우즈 체제 창시국인 미국과 영국이 다자주의를 버리는 시대에, 다자주의의 소중함과 모두의 이익을 설파하는 역할을 한국이 해야 한다. 적어도 섣부른 반다자주의 동조정책으로 경제대국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산농산물 판매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약가 판정에 국산 혁신의약품을 우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농산물 수출국,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자극해 우리 스스로 이들의 정치적 보복의 타깃으로 나서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다자주의가 팽배할수록 세계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다자주의 질서 회복의 동력은 확보된다. 세계대공황에 대한 반성으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탄생했듯이, 인류가 다자주의로 복귀하는 것만이 공멸을 방지하는 길임을 다시 깨닫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한가.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