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뭄에 도랑 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서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법했다. 훈시하듯 사장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월례조회를 없앤 대신 명사 강연을 듣고 토론하며 소통하는 월례 전체모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 특강이라니 낯설게 느낄 만했다.

지난주에 직원들을 상대로 첫 특강을 했다. 입사 1, 2년차 초급직원을 불러놓고 취임 후 처음 연단에 섰다. 그동안 외부 강연을 여러 차례 다녔고, 임원간담회와 간부회의를 정례화해 간부들에게 사장 생각을 밝힐 기회는 많다. 이에 비해 초급직원들은 사장 생각을 대부분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입장이라 이해와 공감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간접적인 전달과 직접 대면은 온도 차가 크다. 사장을 향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속에서 풋풋함과 패기가 느껴졌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듣는 모습에 연사도 덩달아 신이 나서 강연에 빠져들었다. 한 세대를 앞서 살아온 인생 선배이자 임기 반환점을 도는 기관장으로서의 소감까지 섞어가며 준비한 강연을 하다 보니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날 특강은 주제 면에선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무역이 걸어온 길과 무역투자진흥기관인 KOTRA의 역할에 관한 것으로,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였다. 경제성장 동력으로서의 무역,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의 역할 강화, 중소기업 해외진출 지원기관 간의 개방형 협업 등에 관한 사장의 평소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줬고, 질의응답도 하면서 서로 공감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초급직원을 상대로 첫 특강을 한 데는 요즘의 답답한 무역환경도 한몫했다. ‘가뭄에 도랑을 친다’는 속담이 있다. 장마가 지면 물이 불어 넘칠 우려가 있으니 물이 적은 가물에 미리 도랑을 막고 있는 것들을 치워서 대비한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수출 침체가 장기화하는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주변을 점검하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날 특강은 미래를 위해 어린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했다. 조직은 사장 혼자의 생각으로 바꿀 수 없다. 조직이 변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같은 생각을 하고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히 초급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장래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노파심으로 평소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많이 꺼냈던 것 같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새내기들이 가물에 마르지 않는 깊은 샘처럼 장성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조직의 굳건한 대들보가 되고, 나아가 국가 무역투자의 동량(棟梁)이 되길 바란다.

김재홍 < KOTRA 사장 jkim1573@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