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대 그룹의 투자계획이 발표됐다. 어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주요 투자기업 간담회 자리에서다. 여기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주요 기업의 올해 투자계획을 종합한 결과 지난해보다 5.2% 많은 123조원에 이른다며, 전반적 경영여건 부진에도 기업의 80%가 선제적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차질 없는 이행이 중요하다며, 이런저런 지원책을 약속했다. 이맘때마다 거의 연례적으로 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틀에 박힌 이런 행사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기업의 투자계획을 꼭 이런 식으로 발표해야 하는지 복잡한 심경이 교차한다.

전경련은 예고된 행사에 맞춰 주요 기업의 투자계획을 받아내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기업들도 기업마다 계열사별 투자계획을 부랴부랴 집계하면서, 한편으론 다른 기업들의 투자액수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더구나 정부에 보고해야 하니, 일단 지난해보다 늘려잡는 등 모양새를 갖추는 부담 또한 적지 않았을 건 짐작하는 대로다.

문제는 이런 행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개최된다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이 주재하거나 각 부처가 주관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계획만 나왔다 하면 예상되는 민간투자규모 등 현란한 수치들을 제시하는 게 관례처럼 돼버렸다. 기업이 청와대나 관련 부처에 써내야 하는 투자계획만 부지기수인 정도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는 사활을 건 모험이다. 특히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기업이 제출한 투자계획을 한 번에 끌어모아 대외적으로 발표하거나 위에 보고하면 일을 잘하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기업으로선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가뜩이나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은 투자 하나하나에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겠다면 장관과의 간담회를 통해 투자계획을 발표하게 하는 이런 구태의연한 형식부터 없애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