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의 데스크 시각] 가성비와 생존 부등식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가성비’가 소비산업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경영학자 중 가성비의 중요성을 가장 일찌감치 설파한 사람은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10년 주기로 펴내는 저서를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 모델로 ‘생존 부등식’을 제시해 왔다. 생존 부등식은 소비자가 제품에서 느끼는 가치를 V, 제품 가격을 P, 제품 원가를 C라고 했을 때 소비자는 지급한 값보다 가치가 높아야 제품을 살 것이고, 기업 역시 제조원가보다 판매 가격이 높아야 이익을 낼 것이란 지극히 간단해 보이는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를 수식으로 정리하면 V>P>C가 된다.

생존부등식 핵심은 소비자 가치

생존 부등식의 출발점은 제조원가 C가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V다. 기업은 특정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그에 대한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에서 가격을 뺀 V-P만큼을 소비자에게 ‘주고’, 반대급부로 P-C만큼을 ‘받아’ 간다는 것이다. 윤 교수가 기업이 소비자에게 준다고 하는 V-P가 그 제품의 경쟁력이며, 요즘 흔히 말하는 가성비와 맥이 닿아 있다.

생존 부등식에 가장 부합한 성공 사례의 하나로 유니클로를 꼽을 수 있다. 유니클로는 2000년 보온성이 좋고 가벼우면서도 51가지나 되는 다양한 색상을 지닌 플릭스의 히트로 세계적 제조·직매형 의류(SPA) 기업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유니클로가 내놓은 가격은 1900엔으로 당시 타사 제품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품 가격이 가능한 데는 2000엔 아래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확실한 가치를 주겠다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의지와 함께 공급망을 획기적으로 바꾼 시스템 개선이 있었다. 유니클로는 종합상사를 통하지 않고 중국 협력업체를 직접 관리함으로써 원가 체계를 장악했고 대량 발주, 완전 구매, 현금 결제를 통해 그들의 신뢰를 샀다. 옷 한 종류에 10만장만 팔아도 빅히트로 분류되던 시대에 첫해 200만장, 이듬해 800만장, 3년째는 2600만장을 팔아 치우는 대기록을 세웠다.

기업 실력은 불황 때 드러나

그러나 생존 부등식은 다른 한쪽인 P-C, 즉 가격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공정 개선과 함께 T모델 하나만 생산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춰 1920년대 미국 자동차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알프레드 슬론이 경쟁사 제너럴모터스(GM)의 총수에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GM은 쉐보레에서부터 캐딜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을 내놓으면서 T모델에 식상한 소비자들을 파고들었다. 1931년 GM은 포드를 제치고 선두에 올랐으며, 그 이후 순위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훗날 슬론이 한 유명한 말이다. “그 원로 고수는 변화를 마스터하는 데 실패했다(The old master had failed to master change).” 오로지 가격에만 매달렸던 포드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에서 느끼는 가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놓쳤다.

나무가 잎을 다 벗은 ‘나력(裸力)’으로 겨울을 나듯 기업의 실력은 불황 때 더 잘 드러난다. 올 한 해도 기존 브랜드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치로 평가받는 기업들의 치열한 ‘가성비 승부’가 주목된다.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