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재구성된 삼성의 순환출자 조사 결과를 내놨다.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가 10개에서 7개로 줄었지만 7개 중 3개는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신규 순환출자나 순환출자 강화를 금지하고 있고, 합병에 따라 생겨난 순환출자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주고 있다. 따라서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지난 9월1일을 기준으로 내년 3월1일까지 이를 해소해야 한다.

삼성은 공정위 결정이 예상 밖이지만 SDI의 삼성물산 지분(2.6%, 500만주) 매각 등으로 순환출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일이 촉박한 데다 SDI의 삼성물산 지분 2.6%가 시가로 7000억원을 훌쩍 넘어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기업이 합병 등 선제적 구조조정을 단행해 놓고 보니 순환출자 해소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우리는 여기서 순환출자 문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규제하는 차원을 넘어 사업재편 등 구조조정에까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가 특정한 기업 지배구조를 정해 놓고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런 문제로 기업 구조조정이 방해받는 현실도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순환출자는 기업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산물이어서 이를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른 나라에서 순환출자 규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규제가 기업 구조조정의 족쇄가 되고 있다면 이런 자가당착도 없다.

정부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짧은 시한을 정해 놓고 벌칙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 역할을 해줘야 할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하지만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이 법조차 야당이 대기업 특혜라고 주장하면서 형해만 남고 있다. 사방이 꽉 막혀 있는데 어떻게 구조조정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