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대학등록금과 카드수수료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등록금 인상률을 1.7% 이내로 제한했다. 고등교육법에 매년 산정, 고시하도록 돼 있는 ‘대학 등록금 인상률 산정방법’에 따른 것이다. 최근 3년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1.1%)의 1.5배 이내로 묶는 규정에 따라 1.7%라는 통제선이 나왔다. 교육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내년에도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고, 최소한 동결로 ‘권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말이 권고지, 정부가 동결로 간다는데 맞설 대학은 없다. 당장 떡 나눠주듯 하는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무시할 수 있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학별 특성화사업, LINK사업, BK21사업 등 온갖 보조금 프로젝트의 평가·선정에 등록금 인상여부 항목을 넣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정원 승인권은 꺼낼 일도 못 된다. 대학들은 그렇게 순한 양으로 길들여져왔다.

정부 가격통제, 대학발전 막아

많은 대학생이 학비 때문에 고통을 겪는 현실은 잘 안다. 학업에 전념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젊은이도 많다. 하지만 이 또한 수급문제는 도외시한 채 대학과 학생 수만 늘려온 정부의 잘못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등록금이라는 서비스가격에 직접 개입하고 통제하면서 스스로의 부실정책에 대한 반성문이라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정책적 반성으로 비쳐지진 않는다. 한편으로는 대학을 마구 허가하고 한편으로는 정원을 임의로 통제해온 이 모든 게 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믿듯이 학비 책정 또한 정부의 고유 권한이요 의무라는 도그마에 마냥 갇힌 것일지 모른다.

가격 통제는 정당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효과도 없는 정책이다. 대학의 수준을 높이고 학생들이 더 나은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것과는 반대의 길이다. 얼마간 학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게 소박한 선의로 비칠 수 있지만 등록금(가격) 규제는 장차 대학 발전을 가로막을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 문제는 대학에 맡기면서 장학금을 확충하도록 유도하고, 대학 교육의 질적 개선으로 경쟁력을 높이도록 대학과 교육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학의 목표는 껍데기만 학사인 졸업생을 대량 배출하는 게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 인력을 양성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동결이 정책 목표가 되면 ‘학교에 밥먹으러 가나? 공부하러 가나?’라는 경상남도와 경남교육청의 무상급식 논란처럼 저급한 논쟁이 신학기에 또 재연될 수 있다. 대학의 본질과 동떨어진 말싸움거리를 정부가 제공할 이유가 없다.

수수료도 개입…공정위 뭐 하나

연매출 2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1.5%에서 0.8%로 내린 카드수수료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맡겨야 할 요율산정이 금융위원회로 넘어갔다. 영세 사업자들에게 당장 월 몇 만원이라도 이득은 된다지만 카드사는 골병들 것이고 신용결제사업도 쪼그라들게 된다. 카드사들은 고객 서비스 감축에 나서고 연 500조원에 달하는 신용결제 비즈니스도 퇴보할 것이다.

후진사회일수록, 권위적인 정부일수록 가격에 직접 개입하려는 유혹을 더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공은 어렵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에서부터 임대료 상한제로 인한 뉴욕 할렘의 슬럼화까지 역사가 말해준다. 가격을 무시하고 비용에 무지했던 것의 극단적 대가는 세월호 때도 확인했다. 공정위는 또 뭐하고 있나. 교육부와 금융위원회를 공정거래법의 잣대로 조사해야 한다. 법규에 따른 행정이라고? 공정 경쟁을 원천적으로 막고 대학과 신용결제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법이라면 고쳐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