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트럼프 돌풍,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고음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노리는 트럼프는 최근 실시된 워싱턴포스트·ABC 여론조사에서 38%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무슬림 입국 금지, 멕시코인 비하 발언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돌풍을 일으키는 비결은 무엇인가.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평균 29.5%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는 트럼프 신드롬에는 백인 유권자의 근심과 분노가 깊이 깔려 있다. 공화당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령화된 백인 보수층은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급부상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저학력층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2043년이 되면 미국의 백인 인구는 5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국경에 높은 담을 쌓고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를 추방할 것을 주장하며 미국에서 출생한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제를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파리와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샌버나디노에서의 총격 사건으로 미국인의 테러 우려가 커진 것도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 금지와 데이터베이스화, 회교사원 폐쇄 및 감시 강화 등 무슬림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뉴욕타임스·CBS 여론조사에서 테러 위협이 가장 심각한 사회 이슈로 응답됐다. “진짜로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위협적 발언으로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10명 중 6명이 무슬림 입국에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미국인의 ‘테러 불안감’이 인기를 끌어올리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때리기는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증오는 미국적 가치가 아니다”고 비난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신랄한 비판은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인 폴 라이언의 “이런 주장은 보수주의가 아니다”는 논평일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트럼프는 파시스트’라는 논쟁을 초래했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그가 파시스트 선동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한다.

경쟁 후보들의 견제 속에서도 그가 독주하는 배경에는 독특한 정치적 수사(修辭)가 있다. 그는 ‘아이디어’보다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한다. ‘약하다’ ‘바보 같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은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후보며 상대방은 무기력하다는 인상을 유권자에게 심어준다. 다른 후보들이 정책, 이념 등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인의 증오, 공포 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대립각을 형성해 나간다. 이런 방식은 1950년대 공산주의자 마녀사냥에 나섰던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나 흑인 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조지 월러스 전 앨라배마 주지사를 연상케 한다. 메슈 굿윈 켄트대 교수는 “트럼프는 이민의 위협과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뒤처지고 정치적으로도 소외된 유권자를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백인 근로자의 영웅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후보 결정은 전통적으로 당 주류의 여론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 지도부의 ‘트럼프 피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고학력 당원과 여성층의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 무엇보다도 워싱턴 정계의 아웃사이더로서 폭넓은 당내 지지 기반이 없는 것이 결정적 약점이다. 1996년 밥 돌, 2000년 조지 부시, 2008년 존 매케인, 2012년 미트 롬니 등 당 주류가 지지한 후보가 결국 승리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주장처럼 후보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비이성적인 트럼프를 찍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선 승리 가능성은 어떤가. MSNBC 조사는 힐러리와 트럼프 가상 대결에서 52 대 41로 힐러리의 손을 들어줬다. 워싱턴포스트·ABC 조사도 53 대 40으로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여성,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반(反)트럼프 정서가 매우 강하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내년 선거에서 백인 유권자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 트럼프 돌풍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고음으로 내년 2월 공화당 경선이 고비가 될 것이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