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데스크 시각] 의문투성이 '1조 상생기금'
들을수록 의문이 꼬리를 문다. 1조원 농어촌상생기금이 그렇다. 이 기금 조성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조건으로 여·야·정이 지난달 30일 합의했다. ‘기업들 팔 비트는 준조세’란 비판이 일자 정부가 연일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해명을 아무리 들어봐도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농민 돈으로 농민 돕겠다?

첫째, 기금에 돈을 내는 주체다. 정부는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수·축협 등이 출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FTA로 이득을 보는 민간기업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이 야당이 주장해온 무역이득공유제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기금은 한·중 FTA에 따른 농어민 피해보상책이다. 여기에 농어민 단체인 농·수·축협까지 돈을 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농어민 보고 농어민을 도우란 말이기 때문이다.

둘째, 모금 방법이다. 정부는 “절대 강제로 걷지 않겠다”고 장담한다. 기업들이 이미 벌이고 있는 ‘1사1촌’ 사업과 농산물 구입 등을 모두 포함시킬 것이기 때문에 추가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기업들의 기존 농어촌 지원금도 ‘상생기금’으로 쳐준다면 오른손으로 내던 돈을 왼손으로 내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또 이 기금에 돈을 내면 비용으로 인정해주고 세액공제까지 해준다고 한다. 1억원을 내면 2900만원의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이건 농어촌이 아니라 농어촌 지원에 세제혜택을 못 받던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이란 지적이 나올 만하다.

셋째, 왜 유독 농어민만 추가 지원해주느냐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농어민뿐 아니라 소상공인도 중국산 저가품 공세에 피해를 볼 수 있다. 정부가 올해 6월 마련한 한·중 FTA 피해대책 예산 1조7000억원 중 소상공인 등 중소기업 부문에 8000억원을 배정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 추가 대책에 소상공인은 쏙 빠졌다. 농어민에게만 기존 지원액 4800억원의 다섯 배가 넘는 2조6000억원(상생기금 1조원 포함)을 더 쏟아붓기로 했다. 1조원 상생기금을 설계하면서 부문 간 형평성은 왜 고려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이 밖에도 왜 농어민 지원액(10년간 3조원)은 피해액(20년간 3600억원)의 여덟 배를 넘어야 하는지, 한·미 FTA와 한·유럽연합(EU) FTA와 비교해 한·중 FTA에만 지원이 집중된 이유가 뭔지 등 이어지는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성 기금 ‘자발적’ 기부할까

여·야·정 협상에 관여했던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 한마디는 이런 의문을 푸는 데 힌트가 될 만하다. “(무조건 반대만 하는) 역대 최악의 야당을 만나 협상했다. 한·중 FTA를 반드시 연내에 발효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1조원 상생기금안은 막판에 우리가 전격 제안한 것이다.” 연내 발효 시한에 쫓겨 무리한 것인줄 알면서도 급조한 안을 내놨다는 얘기로 들린다. 모든 게 석연치 않고 의문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농어촌상생기금은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약속했던 1조원 ‘대·중소기업 상생기금’도 그랬다. 지난 4년간 4500억여원이 걷혔고, 3800억원 정도만 집행됐다. 포퓰리즘성 준조세의 운명이다. 그렇더라도 야당의 억지 주장에 원칙을 포기하고, 기업 돈을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정부 여당이 조성하겠다는 기금에 ‘자발적’으로 기부할 기업이 있을지 진짜 의문이다.

차병석 경제부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