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검인정·바른 교과서 둘 다 갖기는 어렵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좌파세력은 총력투쟁 중이다. 이들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낙인찍는 데 일사불란하게 집결하고 있다. 반면 우파전선에서는 일부가 “검인정교과서에 문제는 있지만 국정화는 반대한다”고 해 힘을 빼고 있다. ‘교과서 다양성을 보장하는 검인정이 정도(正道)다. 문제 해결이 어렵더라도 검인정을 강화해서 풀어야 한다’ 같은 상식론을 펴는 것이다. 보수의 이런 분열은 ‘검인정은 의(義), 국정은 불의(不義)’라는 인상을 심는다. 실제 국정교과서 지지 여론은 하강일로에 있고 최근의 갤럽 조사는 국정화 찬성 36%, 반대 49%로 발표됐다.

국정화 비판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국내 검인정 시장은 선진국 같은 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8년여 전 검인정이 도입된 이래 교과서 시장은 한국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폄훼하는 교과서만 존재하는 기형(畸形)이 됐다. 그래도 언필칭 ‘다양성의 검정체제’이므로 작년 ‘긍정적 대한민국’을 서술한다는 교학사 교과서가 진입을 시도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교과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사학계, 좌파언론, 야당 등이 인민재판식 매도와 협박을 자행해 전국 2318개 고교에서 거의 채택하지 못했다.

오늘날 이 세력들이 다시 ‘다양한 역사 교육을 위해 국정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 우파지식인들은 또 동조하는 웃음거리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 한국 교과서의 극치는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의 건국이 없다’는 사실이다. 건국이 없으므로 건국일도 없다. 그리하여 지난 7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국민의 64%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의 해로, 21%만이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건국의 해로 응답했다. 도대체 영토도 없고 다스릴 국민도 없고 대한민국이란 국호도 없던 1919년이 건국 원년이 되는 대한민국은 어떤 초현실의 나라인가.

민중사관 역사는 민중항쟁의 고난의 역사에만 치중해서 검정교과서들은 전태일의 생애와 노동운동에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하도록 설명한다. 반면 절대적 빈곤에서 성취한 20세기 경제 기적의 역사는 외면해 이병철 등 기업인은 언급조차 없고, 정주영은 소떼 몰고 방북한 것만 소개한다. 이런 역사 교육은 국가와 청소년의 장래에 독이 되므로 아예 폐지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향후 검인정 강화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중사관·계급사관은 역사를 진실 탐구로 보지 않고 정치·이념투쟁의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결사정신으로 저항한다. 새로운 집필지침을 주고 다시 쓰라고 해도 거부하거나 교묘하게 표현만 바꾼다. 그래서 검정체제 하에서는 모든 책이 포장만 다르고 내용물은 같게 된다”고 말한다. 2013년 교육부는 7개 출판사에 수정을 권고했지만 집필자들이 집요하게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패했지만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언제 어떤 상황이더라도 검인정 방식이 정도라는 분들께 장자가 붕어를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수레바퀴 마른 자국에 빠진 붕어가 나를 보더니 ‘내게 한 됫박 물을 부어 살려주시오’ 청하더군. 그래서 ‘알겠네. 지금 남쪽 오월(吳越)의 왕에게 유세 가는 중이니 거기서 서강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려주겠네’ 하였더니 붕어가 벌컥 화내며 말했다네. ‘지금 한 됫박 물이면 살 수 있는데 그대가 그리 약속한다면 조만간 건어물 가게에서나 나를 찾게나.’”

오늘날 지극히 기형이 된 검정체제의 치유를 기다리느니 우리는 장자의 붕어처럼 죽은 건어물이 된 청소년 역사 교육을 먼저 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올바른 역사 교육이지 교과서 형식이 아니다. 검인정을 지키느냐 역사 교육을 지키느냐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지, 둘 다 가질 수 없는 현실임을 국정교과서 비판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