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소시지 소동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소시지 햄 등 가공육을 담배 석면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해 충격이 일파만파다. 세계 곳곳에서 가공육 판매가 뚝 떨어졌다. 독일 호주 미국 등 가공육 생산국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럼 뭘 먹이냐”며 불안해한다. 정말 소시지나 햄은 위험한가.

소시지(sausage)의 어원은 소금에 절인다는 뜻의 라틴어 ‘salsus’다. 소시지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만큼 오래다. 기원전 3000년께 수메르인들이 부패하기 쉬운 고기 보관법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도 “창자에 고기와 피를 채운 후 사람들이 큰 불 앞에서 열심히 굽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중국에선 기원전 589년 소시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윤덕노, ‘음식잡학사전’)

소시지는 햄을 만들 때 나오는 고기 부스러기로 만든다. 고기가 귀한 시절엔 소시지도 귀했다. 중장년층은 학창시절 소풍갈 때 어머니가 싸준 김밥에서나 소시지를 구경했다. 고기 함량이 희박한 연분홍빛 소시지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요즘 소시지는 고기가 70%(햄은 90%) 이상 들어가도록 규정돼 있다.

가공육의 위험성은 붉은색을 내는 발색제(아질산염) 탓이다. 아질산염은 과다 섭취하면 혈관 확장, 효소 운반능력 저하 등 부작용이 생기고 발암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WHO는 하루 허용량을 체중 1㎏당 0.06㎎으로 규정했다. 성인도 가공육을 하루 100g 이상 먹으면 안 좋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소시지 햄은 포기하기 힘든 단백질 공급원이다. 본래 채식에서 육식 위주로 진화한 인류는 이젠 고기를 안 먹으면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vegan)로 20년을 산 여성이 심각한 심신의 질병을 겪기도 했다. 같은 금욕주의 종교지만 고기를 안 먹는 예수재림교 신자들보다 고기를 먹는 모르몬교 신자들이 더 오래 산다.(리어 키스, ‘채식의 배신’)

문제는 먹거리 경고가 대중의 극단적인 기피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몸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있는 탓이다. 하지만 가공육을 안 먹는다고 암이 예방되는 것은 아니다. 암은 한두 가지 요소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과잉은 좋지 않다.

혹자는 이번 WHO의 발표를 로마시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소시지 금지령’에 비유한다. 논쟁은 폭발했는데 일반인이 신뢰할 만한 과학적인 해답은 안 보인다. 과학인지, 과학을 가장한 공포인지 궁금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