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30여년 수도권 규제, 투자·일자리·FDI 기회만 날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경제는 2~3%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양상이다. 지난해 3.3% 성장률을 보인 가운데 올해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중국발 경제 불안, 엔저 영향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 예측기관들은 한국의 성장률이 2.5%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호(號)가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주저앉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이런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신기술 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조업 시설투자가 촉진되도록 범국가적 대책과 지원이 시급하다.

하지만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는 수도권 규제를 꼽을 수 있다. 국내 등록 공장의 48.3%가 있는 수도권은 투자 여하에 따라 한국 제조업의 명운이 걸린 곳이다. 하지만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 이후 지난 30여년간 수도권은 인구 집중 억제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과밀억제, 성장관리, 자연보전권역으로 나뉘어 공장, 대학, 대규모 개발사업이 제약받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경제활성화와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수도권 규제 완화가 지방의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비수도권 지역의 반대 논리와 저항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수도권 집중 억제의 기본 틀은 유지한 채 필요한 업종과 허용 면적을 제한해 찔끔찔끔 풀어주곤 했다.
[뉴스의 맥] 30여년 수도권 규제, 투자·일자리·FDI 기회만 날렸다
노무현 정부는 ‘선(先) 지방 육성, 후(後) 수도권 계획적 관리’ 기조 아래 중앙정부의 세종시 이전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결정했다. 수도권 성장관리권역 산업단지에 국내 대기업 8곳의 첨단업종 공장 신·증설을 허용했다.

균형발전이란 정치논리로 규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통해 수도권 기업의 공장입지 투자 촉진을 위해 과밀억제 및 성장관리권역 기존 공장의 증설과 첨단업종 입지 규제를 완화(10·30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 확대를 위해 과감히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고 밝힌 이후 이를 둘러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경기도 등 수도권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등 경제논리로 규제 완화를 지지하고, 충청·강원도 등 비수도권은 균형발전 등 정치논리를 내세워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의 반대 논리는 ‘규제가 풀리면 기업의 지방 투자가 줄어 양극화가 심해지고, 규제를 유지·강화해야만 수도권 기업들이 지방으로 공장을 옮겨 지방 발전과 지역경제가 활성화돼 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이 2008년 ‘10·30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 이후 수도권에서 공장입지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 118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런 논리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10·30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가 지난 6년간(2008~2014) 지방경제 위축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도권 규제 지속과 생산비용 상승 등으로 수도권 지역의 제조업 투자가 빠르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 해외탈출로 일자리 상실

10·30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간 비수도권의 공장용지면적 합산과 총공장등록건수의 연평균 증가율(3.68%, 4.86%)은 수도권(2.58%, 3.74%)보다 높았지만, 수도권은 비수도권은 물론 전국 평균(3.58%, 4.38%)보다 낮았다. 오히려 지난 6년간 수도권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누계액(1227억5600만달러)은 외국인 직접투자 누계액(469억8000만달러)보다 2.6배 많았다. 이에 따른 순자본 유출액(757억7600만달러)이 전국 기준 자본적자(692억7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처럼 기업은 투자 타이밍에 맞게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로 글로벌 경쟁 업체에 밀려 애초 계획한 투자를 못하거나, 개방화 진전으로 생산요소의 이동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선택을 하게 된다. 1999년 레고랜드는 자연보전권역의 관광지 면적제한에 걸려 이천지역 투자를 포기하고 투자처를 2002년 독일로 옮겼다. 글로벌 백신기업인 GSK가 수도권 공장총량 규제에 막혀 2006년 싱가포르에 투자한 사례도 있다.

둘째, 수도권 규제가 지속될 경우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하기보다는 적절한 투자 타이밍을 놓쳐 투자를 포기하거나, 해외로의 공장 이전을 선호해 ‘규제의 풍선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제한적인 규제 완화와 수도권 규제 지속으로 투자 시기를 놓쳐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지방으로 이전(10개사, 4826억원)하기보다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28개사, 9603억원)하는 사례가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 규제로 인해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9개)의 대부분(8개)은 충청·강원지역으로 옮겼다. 균형발전보다는 수도권 범위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기업이 투자 적기를 놓치면 해당 기업은 매출 감소 외에 신제품 출시 지연, 금융비용 증가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는 점이다. 한경연 조사 결과 2009년 이후 수도권 소재 62개 기업이 수도권 규제 등으로 투자 시기를 놓쳐 입은 경제적 손실 규모는 미투자금액, 금융비용 등 3조3329억원이며, 1만2059명에 달하는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졌다.

투자 시점 놓치지 않게 규제 풀어야

소비자 요구에 부합하는 신제품 생산과 기술 개발로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투자 타이밍에 맞게 정책 및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규제 위주의 수도권 정책을 지방 발전과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라는 상생발전 전략으로 국토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중앙행정기관의 세종시 입주가 완료되고, 혁신도시로 공기업 이전 등이 상당히 진전되는 등 지방발전 인프라가 구축됐으므로 이제는 수도권 규제에 묶여 기업들이 적절한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수도권의 기존 공장 증설과 첨단업종 신설 허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양금승 <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