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간소비 '1% 함정', 성장동력 끊긴다
경기침체의 수렁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기습적 위안화 평가절하, 지속되는 엔저(低), 기정사실화된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여건도 악화일로다. 침체된 내수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 상반기까지 4년 연속 ‘1% 함정’에 빠져 있다. 2012~2014년 민간소비는 각각 1.9%, 1.9%, 1.8% 증가에 그쳐 경제성장률이 2.3%, 2.9%, 3.3%로 높아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도 민간소비 증가율 1% 함정 탈출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1분기에 1.5% 성장한 민간소비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2분기에도 1.6%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과거 선진국 경험을 보면 민간소비가 경제 대도약의 디딤돌이었다.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3만달러·4만달러 시대로 올라설 때마다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빨리 증가하면서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한국에서는 민간소비가 선진국 도약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비침체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으면서 9년째 ‘2만달러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왜 민간소비가 선진국 도약의 걸림돌로 작용할까. 답은 간단하다.

첫째,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번뜩이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신시장을 개척해야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는데 지금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숱한 규제장벽이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둘째, 가계부채 급증이다. 통상적으로 가계는 빚을 먼저 갚고 나머지 돈으로 소비지출을 하는데 소득에 비해 부채가 더 빨리 증가해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짐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셋째, 소득이 소비로 연결되는 힘이 선진국에선 강화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약화되고 있다. 소득이 있어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후 불안과 주거 불안, 일자리 불안 탓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가운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 불안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최근 전셋값 급등에 따라 주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1%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성장잠재력이 급속도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1% 성장에 머물러 있는 한 잠재성장률이 3%대 초반에서 2%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관광의료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둘째, 가계부채가 가계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하지 못하도록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고 부채구조 또한 개선해야 한다. 지난 7월 가계부채 종합대책에서 부채의 질 개선방안은 충분했으나 증가 속도를 늦출 대책은 미흡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적용 범위를 확대강화하고, 금융회사가 취급할 수 있는 대출총량을 규제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후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노후 소득 보장에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 등 공적 보험을 강화하고 퇴직연금을 정착시키며, 개인연금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연금 3층탑 쌓기’를 장려해야 한다.

또 가계저축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고령층 일자리 확충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넷째,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켜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활성화하고, 민간의 기업형 임대사업자가 양질의 임대주택을 싸게 공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준협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ododuk1@h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