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사면, 부패·반사회범죄 아니면 누구도 차별 말아야
한국은 8월15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광복절 행사를 열고 있다. 역대 정부는 광복절에 국민 화합과 통합을 내세우며 특사(特赦)를 단행하고는 했다. 광복 50주년과 60주년에는 400만명 이상 대규모 사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특별사면을 남발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후보 때 특별사면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지난해 설 명절을 앞두고 서민생계형 사범에 대한 특사만 한 번 했다. 박 대통령은 광복 70주년의 뜻 깊은 해에 그 의미를 살리면서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사면의 필요성을 최근 언급했다.

올 들어 경기 침체가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와 그리스 채무상환 불이행 사태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한 상황을 고려해 국정 변화를 모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광복절 사면의 대상이나 규모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뉴스의 맥] 사면, 부패·반사회범죄 아니면 누구도 차별 말아야
사면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제도다. 국가권력을 가진 군주가 국민에게 은사(恩赦) 내지 은혜를 베풀어 국민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사면권은 1628년 영국의 권리청원에 등장해 문서화됐고, 1787년 미국 연방헌법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명문화되면서 실정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세계 각국의 헌법에 사면권이 명문화됐다. 한국도 1948년 건국 헌법에서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사면권이 규정돼 있다. 한국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면권자가 대통령으로 돼 있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사면권을 행사하는 국가도 많다.

사면은 사면의 주체가 법에 의한 권한 행사를 통해 국가형벌권의 자체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하거나 형벌권의 효력을 없애주는 제도다. 이 때문에 사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 현대 민주적 법치국가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그러나 사면은 불완전한 법에 의해 내려질 수 있는 오판을 시정·보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부당한 사법권 행사를 견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을 받은 자나 더 이상 자유형을 집행할 필요가 없는 수형자의 신체적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을 막아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능도 한다.

정치범 구제·국가 경사 함께하기

그런데 실제로 사면은 정치범을 구제하거나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기쁨을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헌정사를 보면 ‘유신헌법’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박해받았던 야당 정치인을 사면하는 경우나 설 같은 명절이나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에 즈음한 생계형 범죄에 대한 사면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모두 101차례에 걸쳐 사면이 시행됐다. 대부분 특별사면이었다. 헌법에서 특별사면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략적으로 특별사면권을 행사한 경우가 많았다. 1995년 광복 50주년 특사, 1998년 대통령 취임 특사, 2005년 광복 60주년 특사 등 역대 정부의 주요 특사에서는 정치·경제사범 등도 포함됐다. 이로 인해 끼워넣기 또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정략적 이용에 부정적 시각도

부패사범이나 선거사범 등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자들이 특별사면 대상이 되는 것은 사면의 순기능을 해치고 국민의 준법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한국에서 특별사면에 대해 국민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역대 정부가 정략적으로 제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법 감정에 합치하지 않는 사면권 행사로 사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그 결과 1948년 제정된 뒤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사면법이 2007년 처음 개정됐다.

그동안 사면에서 항상 논란의 초점이 됐던 특별사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사면법에 제10조의 2를 신설,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사면심사위원회는 4명의 민간위원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과반수가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라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은 헌법에 대통령 권한으로 사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헌법은 일반사면과 달리 특별사면에 대해서는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권력분립 원칙과 평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으로 남용할 수 없으며, 사면 절차를 위반하는 경우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다. 사면 대상도 원칙적으로 형사사건에 국한해야 하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행정법규 위반자는 대상으로 할 수 없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면허를 취소한 자에 대한 사면은 오히려 국민의 준법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권유린 범죄와 권력형 부정부패, 선거사범 등은 사면에서 제외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헌법에서 탄핵사건을 사면에서 제외하고 있다. 덴마크 헌법은 장관을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노르웨이 헌법은 하원에서 소추된 경우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다수의 국가가 사면제도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 한국도 헌정사적으로 사면제도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정략적으로 남용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의 자의성을 금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사면권 자의적 행사는 막아야

이번에 박 대통령은 광복절 특사에서 기업인 사면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보다 폭넓은 특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면제도의 본래 취지에 걸맞은 특별사면을 위해서는 특정인을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포함하는 문제보다는 사면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라고 해도 부패나 반사회적 범죄가 아니라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 형기의 반 이상을 마치든지 모범적 수형 태도로 반성한다든지 개인의 급박한 가정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등의 사면 기준이 명확하다면 사면 대상을 가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