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더 일하거나 더 가난해지거나'
유로(Euro)를 자국화폐로 쓰는 국가를 묶어 유로존이라 한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연합(EU)국들이 주축이다. 모나코 산마리노 바티칸은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로화를 쓴다. EU와 그렇게 협약을 맺었다. 단일통화 지대지만 유로존 안에서도 경제력 차이는 상당하다. 그렉시트(Grexit)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독일과 그리스 간 격차도 그렇다. 하지만 그리스보다 못한 유로존의 빈국도 많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이 그런 나라다.

그리스의 1인당 GDP가 1만6300유로(약 1만8120달러·2014년·유로스태트)인 데 비해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각각 1만2100유로, 1만2400유로다. 이들 국민이 희랍인들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국민의 월평균 연금수령액은 각각 293유로, 242유로다. 반면 그리스는 833유로에 달한다. 온통 빚 내서 연금잔치에다 복지천국을 만든 나라를 유로존의 빈국들까지 왜 도와야 하느냐는 반발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것만도 아니다. 라트비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채로 재정난에 처하자 즉각 정공법대로 대처했다. GDP의 15%까지 정부지출을 줄였다. 그 바람에 2009년 GDP 14% 감축, 실업률 20%라는 빙하기를 지나기도 했지만 2010년부터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리투아니아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내핍으로 차디찬 겨울을 이겨낸 북극권의 모범국들 눈에 풍광 좋은 에게 해변에서 한담을 즐겨온 희랍인들이 어떻게 비칠까.

뱅크런 조짐이 나타나자 그리스 은행들은 지난달 말부터 예금인출을 제한하고 있다. 주당 120유로만 찾게 된 연금생활자들이 절망에 빠졌다는 외신도 많았다. 이에 대한 라트비아인들의 촌평이 특히 정곡을 찔렀다. “그리스는 따뜻해 난방비도 덜 들고, 과일 채소도 (발트국보다) 쌀 텐데 120유로로 못 산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가부도 지경에도 정신을 못 차렸거나 아니면 소위 ‘배째라’로 나온다고 본 것이다.

금융위기든 재정위기든 근본 처방은 다를 게 없다. 더 일하거나, 더 가난해지거나다. 더 일하며 덜 쓸 수 있다면야 위기극복은 배로 빨라질 것이다. 구조개혁 없는 금융지원은 파국을 연장할 뿐이다. 올리브가 지천이지만 기름 짜는 시설이 변변찮아 열매는 수출하고 올리브유는 수입한다는 그리스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후예들이 인류에 또 교훈을 주고 있나. 이번 교훈은 ‘치러야 할 비용은 결국 치러야 한다’일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