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혼란 예고된 '도로명 주소'
본지가 지난 14일 보도한 ‘커버스토리-길 잃은 도로명 주소’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만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 중 열에 아홉 이상은 도로명 주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담았다. 정부가 익숙한 옛 지번 주소 대신 4000억원의 예산을 써가면서까지 새 주소를 도입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었다.

택배 기사들을 동행 취재한 결과 일선 배달 현장에선 도로명 주소 도입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정부가 2011년 7월 도로명 주소를 공식 발표한 이후 2년여가 지났지만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 우편물의 도로명 주소 평균 사용률은 17.7%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홍보예산만 230억여원을 투입했지만, 새 주소를 정착시키는 데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내년 1월1일부터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이라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옛 지번 주소가 완전히 없어지고, 새 주소만 써야 하느냐는 댓글이 적지 않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도로명 주소는 전·출입, 출생·사망, 혼인·이혼 등 각종 민원 신청 때는 공식 주소로 적용되지만, 주택 매매·전세 계약서와 개인 간 우편물 등에는 지번 주소를 쓸 수 있다. 민간 분야에선 앞으로도 옛 주소와 새 주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주무 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언론 등에서 새 주소가 전면 시행되면 국민이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생활에선 달라지는 것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면 시행’이라는 방침만 고수한 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도로명 주소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차라리 이렇게라도 국민에게 알려야 새 주소가 정착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도로명 주소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100여년 만의 주소 체제 개편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를 정착시키겠다는 이유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도로명 주소 도입이 필요한 이유와 중요성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홍보할 시점이 됐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