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공무원연금, 언제까지 혈세로 지원할 건가
미국 미시간주 연방파산법원은 여전히 시끄럽다. 디트로이트시 파산보호 신청을 놓고 연일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쟁점은 연금이다. 은퇴한 전직 공무원들은 시의 파산신청이 연금을 축소하기 위한 술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알다시피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자동차산업의 쇠락에서 비롯됐다. 세수가 줄어들면서 행정서비스의 질이 떨어졌고, 도시경쟁력은 빠르게 악화됐다. 그러자 시가 서둔 일이 세율 인상이었다. 시민들은 미시간주에서 가장 높은 재산세와 소득세를 부담해야 했다. 법인세율도 두 배로 올렸다. 시민과 기업들이 도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래퍼 곡선’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세수는 곤두박질쳤다.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유령의 도시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전·현직 공무원들의 반발은 거세기만 하다. 시가 사라지면 사라졌지, 자신들의 연금 혜택에는 조금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평생 쌓아온 노후 대책이 흔들리는 것을 누군들 좋아하겠나. 그러나 그들의 노후를 위해 세금을 바쳐온 시민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디트로이트시가 시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 가운데 40% 이상은 퇴직 공무원을 위한 연금 지급에 쓰였다. 10년간 발행한 채권의 대부분은 퇴직연금 재원 마련에 쓰였고, 재산세로 거둔 수입 16억달러도 모두 연금 관련 채권 상환에 들어갔다. 시의 채무 185억달러 가운데 절반인 92억달러가 퇴직 공무원에 대한 연금과 건강보험료 지급 관련 채무라면 할 말 다했다.

부도난 도시의 공무원도 이 정도다. 아직 재정건전성이 나쁘지 않다는 한국의 공무원들은 어떨까. 눈곱만한 것 하나 고치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간 4000만원 이상의 연금 소득이 있는 퇴직 공무원들이 건강보험료를 내기 시작한 것은 고작 석 달 전의 일이다. 사업소득이 있거나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초과하면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될 수 없지만 이들은 자식들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때만 되면 이 제도를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전직 공무원들의 반발과 현직 공무원들의 사보타주 탓이었다. 연금을 4000만원 넘게 받는 2만여명은 그야말로 고위 관료 출신이다. 명예와 권력을 다 누린 사회 지도층이라는 얘기다. 월평균 18만원이다. 이들에게 큰돈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건보료를 서민들에게 떠넘기느라 안간힘을 썼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렇다고 개혁의 시도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 미완에 그쳤고, 거꾸로 혹을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금 재정이 바닥났던 2000년에도 개혁에 나섰지만 조직적인 반발에 실패했고, 오히려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워주는 보조금 제도가 도입됐다. 그 뒤로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쏟아부은 보조금이 28조원이다. 2007년과 2009년에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손질했다지만 기존 공무원의 연금은 제외됐다. 개혁의 메스가 가해진 부분은 2010년 이후 공무원이 되는 사람들의 연금이었다. 미래 공무원의 연금을 개혁하다니, 이런 장난이 어디 있는가.

가입자들이 낸 돈의 2.5배를 받는 구조가 공무원연금이다. 국민들만 공무원들의 노후생활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 내년에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국민들이 막아줘야 하는 돈이 4조원이 넘는다. 그 난리를 치고 가까스로 내년 예산에 반영된 기초노령연금이 5조원인데 말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있다. 개혁에 대한 논의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부총리도, 안전행정부 장관도, 국회도 연금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침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연금 개혁론자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을 역설해온 전문가다. 분위기는 괜찮다.

다만 시점이 문제다. 정권 후반기에 특수직역연금에 손을 댄다는 것은 개혁을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권에 공무원이 표로 보이고, 공무원들이 정권을 우습게 생각하는 시기가 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박근혜 정부도 때를 놓치면 지난 정권과 다름없는 ‘연금 폭탄 돌리기’의 일원이 될 뿐이다. 개혁의 출발점은 바로 지금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