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빈 자리 후유증' 커지는 보험업계
“차기 손해보험협회장은 누가 되는 겁니까?” “보험개발원장은 아직도 당국 지침이 안 내려왔나요?” 요즘 보험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얘기다.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동정을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질문도 적잖다.

이장호 전 BS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퇴진 압박을 전후해 ‘관치(官治)’ 논란이 불거진 이후 보험업계의 인사가 완전히 멈춘 상태다. 주요 유관 단체장들의 자리가 공석으로 비어 있는 데도 선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보험개발원장 자리다. 전임 원장이 지난달 29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지 한 달이 가까워 오지만 후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손해보험협회도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 협회장 임기가 오는 26일 끝나는 데도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추천위원회도 꾸리지 못했다. 인사 지연의 이유는 보험개발원과 손보협회 수장을 낙점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상부 지시를 기다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두 기관이 처한 환경이 한가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험개발원은 최근 보험료율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신뢰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동차보험 할증체계 개선작업도 연내에 끝내야 한다. 손보협회 역시 악화되는 보험업계 수익성 방어 등의 당면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 없는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인사 논란에 묻혀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유관단체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도 파행양상이다. 질질 끌고 있는 우리아비바생명 사장 인선에서 잘 드러난다. 지주사에서 새 사장을 내정한 지가 두어 달이나 됐는데도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다. 퇴임 예정인 사장이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회사는 중·장기 전략 수립은커녕 기존 사업의 진행마저 버겁다. 임직원들은 차기 CEO에 대한 정보 수집과 줄대기가 우선이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고착화되면서 보험산업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위기를 맞고 있다. 수익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점점 세지는 규제망도 보험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관료나 보험사들이 첫 단추인 인사에서부터 우왕좌왕하며 보신주의에 빠지는 것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수천만 보험가입자에 대한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