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연한, 너무나 당연한 전력위기
얼마 전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여름을 앞두고 전기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필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느껴져서다. 에너지 전문가로서 전력수급계획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하게 내용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미래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적정량의 설비를 건설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전문적인 식견은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정치적인 고려가 상식이나 전문성을 압도했다. 요즘의 전력부족이 일어나게 된 과정과 그때 그 장면들을 하나씩 설명해 보려 한다.

첫째, 전력공급량을 여유있게 확보하는 것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환경친화적인 사회가 되자는 논리로 환경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전력공급보다 수요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수요관리의 목표량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보다 높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듯한 주장이고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현실론적인 전망이나 전력부족에 대한 염려는 당위성과 의지를 이기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도 당장 눈앞의 일도 아니니 더욱 그러했다. 공급부족을 예견할 수 있었다.

둘째, 만들어진 계획에 따라 설비를 제때에 안전하게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시비는 계속됐다. 지역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발전설비뿐만 아니라 송전선도, 변전소도 내가 사는 지역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보상을 하고 지역간 형평도 맞춰야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정보다 지체되는 현상은 만성화됐다. 제때 완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안전하게 설비를 건설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오랜 시간 원전을 비롯한 전력설비는 독점사업이었다.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끼리끼리의 문화가 강했다.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폐쇄적인 질서가 안전하게 설비를 거래하거나 건설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전력이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가 소유하는 독점 공기업이다. 구조개편은 요원하고, 공기업의 폐쇄적인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다.

셋째는 잘못된 요금체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 중 하나다. 이웃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여건인데 전기요금은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저렴한 전기 요금은 폭발적인 전력소비로 이어졌다. 문을 열고 냉방을 하고, 등유보일러를 없애고, 바닥에 전선을 깔아 난방하는 일이 마구잡이로 진행됐다. 어렵게 만든 전기로 실내 난방을 하는 것은 생수를 사서 설거지하는 것과 같다. 석유가격은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요지부동이었다. 홍수가 나면 주위보다 낮은 지역이 물바다가 되듯이 감당하기 어려운 이전수요가 전기로 몰려왔다.

전기요금 인상은 정부의 물가 정책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일종의 정치적 압력이었다. 거의 해마다 선거가 있었다. 대통령선거, 총선거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었으며 보궐선거도 많았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정치적인 이유가 경제적인 논리를 압도했다. 그래서 전기요금은 늘 제자리였고, 전력수요는 폭발했다. 전력소비가 수급계획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올해도 전력부족 사태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원전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비리로 해당 원전 가동이 정지되는 바람에 준비된 전력설비로는 피크를 넘길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금은 위기를 넘기는 일이 중요하다. 설비가 더 이상 고장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소비를 줄이며 절약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답답하지만 그렇다.

이제 에너지 정책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가격을 규제하고 새로운 공급자의 진입을 막는 과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에도 임기응변이나 희생양 찾기에만 골몰하게 되면 전력부족은 여름마다, 또 겨울마다 찾아올 것이다. 정치적인 고려가 지나치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일시적으로는 넘어갈 수 있지만 길어지면 국가의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게 된다. 우리는 지금 눈으로 그 과정을 보고 있다.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