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집이 안 팔린다고 ?
새 정부의 하우스 푸어 대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핵심 내용은 보유주택 지분 매각제도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주택금융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채무자 동의 아래 매입하고 환매조건부로 집 전체나 지분 일부를 넘겨 받는 방식이다.

하우스 푸어 대책이 이처럼 공공기관을 동원해 주택을 사주는 방식 위주로 짜여진 이유는 간단하다. 집이 안 팔리는 게 하우스 푸어의 최대 고민이라고 하니 정부가 나서서 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하우스 푸어의 고민을 덜어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집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도는 하우스 푸어 대책

하우스 푸어의 진심이 집 매각이 아니라는 건 은행의 하우스 푸어 구제금융 이용실적을 보면 명백해진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하우스 푸어 금융 프로그램인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재임대)’을 내놨다. 집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고 3~5년간 대출이자 대신 월세를 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1년 반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신청자는 단 4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집을 소유하겠다는 집착이 강하다. 그러니 매각이든 신탁이든 집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넘기는 걸 꺼린다. 그런 하우스 푸어가 집이 안 팔린다고 하소연 하는 건 집값이 떨어져 죽겠다는 소리지 집을 꼭 팔겠다는 건 아니다. 물론 개중엔 정말 사정이 급해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건 집값이지 매매의 성사 여부가 아님은 자명하다. 산간벽지나 오지의 주택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주택가에 위치한 집이 안 팔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시세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프로그램이나 정부 대책이나 취지는 좋은데 집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우리 국민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 정부는 집이 안 팔리면 우리가 나서서 사주겠다는 식이니 정부 대책은 자꾸 겉돌고 하우스 푸어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는 것이다.

무주택자 지원이 더 중요해


그런 점에서 하우스 푸어를 바라보는 시각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생각이다. 우선 정부가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시각부터 변해야 한다. 하우스 푸어는 집값 상승을 바라보고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가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빚을 내서 주식 투자했다 손실을 본 것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대상이 단지 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나서서 뭔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옳지 않다. 사실 주택 실수요자라면 당장 집을 팔 일도 없을 테고 집값이 떨어졌다고 큰 손해를 볼 일도 없다.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집값 역시 다른 가격과 마찬가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집값 목표를 과거 최고치로 삼고 분양가나 매입가를 마지노선으로 여긴다면 집은 언제나 안 팔릴 것이고 집 소유자는 늘 불행할 수밖에 없다.

가계대출 부실의 위험을 들어 하우스 푸어 지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책은 모럴해저드를 낳고 장기적으로 대출 부실을 더 조장할 수도 있다. 부동산시장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엔 최소한의 주거마저 보장 받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전세 보증금을 다 날려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복지를 앞세우는 새 정부라면 하우스 푸어보다는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게 옳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