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와 청년실업의 원인이라며 대기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경제불황과 청년실업은 전 세계가 앓고 있는 몸살이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경제민주화라는 틀 속에서 실업과 저성장 문제를 대기업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대기업 주도형 경제로 성공적인 성장을 해왔다. 이런 대기업 주도형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이끌어 온 대만은 심각한 산업공동화 현상으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는 상대적으로 연구·개발과 마케팅이 약할 수밖에 없다. 원가경쟁력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진 대만 기업은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게 됐고 결국 대만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한국의 강점은 대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하고 중소기업은 좋은 품질과 가격의 부품을 공급하는 전문화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대량생산이나 주문생산에서 우리가 선진국의 기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능 분담의 생태계에서 나오는 막강한 제조업 경쟁력 덕분이다.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아니라 국내의 반(反)기업적, 반투자적 환경이다. 청년실업과 고용창출 문제도 경제의 파이가 커져야 풀 수 있는데 이는 반드시 투자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사안은 어떻게 하면 대기업에 투자의 발동을 걸게 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과 투자유치 경쟁에서 판판이 깨지고 있다. 외국에 공장을 세우는 대기업을 비난하기 이전에 과연 투자유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 장쑤성 옌청시는 기아자동차의 공장증설 프로젝트를 상하이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울~옌청 간 직항로까지 개설해 주었다. 항로 개설의 손실을 옌청시가 부담하면서까지 기아차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대기업 특혜라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노동법은 어떠한가. 기업의 투자의지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수준이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은 생산성 향상, 전보 배치, 작업수칙 개정, 작업시간 운용, 노무관리 개선 등 무려 16개 항목에 대해 사측이 노조와 협의를 한 다음에 의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용자는 경영계획, 분기별 생산계획, 인력계획 등도 노조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만약 이들 사안에 대해 노조가 문제를 삼으면 경영 집행력이 상실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노동법 때문에 사측은 생산현장 통제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당연히 국내 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경우 해외 공장 생산성이 국내 공장보다 50~70% 이상 높다. 국내 공장 생산성은 계속 떨어지는데 임금은 오르고 있으니 누가 국내에 투자를 하겠는가.

이렇게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실업문제는 풀 수 없다. 중국, 미국, 유럽, 러시아에서는 한국 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융숭히 모셔가는데 정작 우리나라 안에서는 기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세계에 투자할 곳은 많고 한국에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는 대통령의 지원 의지에 힘을 얻어 기업인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했었다. 새 정부가 과거처럼 기업이 투자를 하게 하려면 우선 기업의 사기를 북돋워야 한다. 지금처럼 경영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노동법과 반(反)대기업 정서 아래에서는 투자의욕이 살아날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제2의 경제부흥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개혁해야 할 게 노동법이다. 그리고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격려와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가 과거와 같이 국가를 위해 투자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이 땅에 투자가 다시 이뤄질 것이다. 그 투자의 과실은 고용창출로 나타난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