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화학소재업체 클라레가 미국 텍사스에 액정 패널과 종이 첨가물용 합성수지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 셰일가스가 분출되는 가스전(田)근처다. 화학제품의 기초 소재인 에틸렌을 쉽게 확보할 수 있어서다. 물류비용도 적게 들고 전기요금도 싸다. 지금까지 제품의 50%를 일본에서 생산해왔던 클라레다.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 향후 3년 이내에 일본 생산 비중을 20%이하로 줄일 계획이다. 스미토모나 아사히카세이도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일본업체만이 아니다. 남아프리카의 글로벌 화학업체 사솔과 대만의 타이완플라스틱도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세계적 석유 메이저들도 화학산업에 뛰어든다. 가스 정제 및 화학공장을 세워 아예 화학 기업으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셰브론이 2015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에 150만 규모의 에틸렌 공장을 세운다. 셸과 엑슨모빌도 에틸렌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석유메이저들 가스공장 건설

미국 셰일가스 혁명이 화학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석유에서 화학 소재·부품을 만드는 구조가 가스에서 출발하는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IT시대에 버금가는 가스화학산업시대가 벌써 열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화학위원회는 미국의 경쟁력이 가스화학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견할 정도다. 셰일가스는 풍부하고 가격은 매년 떨어진다. 불과 2년 전에 비해 반값이다. 가스를 이용하는 산업이 창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무엇보다 셰일가스의 80%가량인 메탄가스를 화학소재의 원료인 에틸렌이나 프로필렌으로 변형하는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카세이(旭化成)나 미국의 하니웰 등이 벌써 가스기반 에틸렌을 개발해냈다고 발표했다. 석유 원료에서 에틸렌을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고 한다. 벤처업체 실루리아 테크놀로지도 관련 공정을 개발해냈다고 밝혔다. 세계의 화학기업과 벤처기업들이 더욱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분야에 도전한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산업이 태동할 수도 있다.

돌파구 필요한 국내 화학업체

미국의 상황 급변에 전 세계 화학업계가 긴장한다. 유럽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게하르트 로이스 오스트리아 OMV 석유회사 회장은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힐난한다. 그는 “프랑스는 원자력, 폴란드는 석탄, 독일은 풍력과 태양에너지를 얘기하지만 아무도 가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며 “이러고서 과연 유럽의 에너지 경쟁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석유화학시대를 열었으면서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미국이었다.이제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한국의 수출품 1~2위를 다투는 것이 석유화학제품이다. 여천석유화학공단은 압축성장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 그 화학업체들이 곤경에 빠져 있다. 당장은 중동 석유화학업체들이 중국을 공략하면서 수출 부진에 휩싸인 것이 크다. 하지만 셰일가스의 등장에 따른 화학산업 재편에 어떻게 살아남는가가 더 큰 문제다. 아예 공장과 기업을 미국이나 캐나다 중국 등 천연가스가 나오는 곳으로 옮기는 게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을 바라보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수천,수만개다. 화학산업의 불이 꺼지고 산업공동화가 이뤄진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인가.

오바마와 롬니 등 미 대통령 후보들은 셰일가스의 부상을 언급하며 적극적 지원을 얘기한다. 우리 후보들 중에선 이런 후보가 왜 없나.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