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이비 CEO論 침묵시킨 정몽구 회장
정몽구 현대 · 기아차 회장이 취임한 1998년 당시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조롱거리였다. 싸구려로 각인돼 미국 방송에서는 내리막을 달리는 1인용 썰매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외환위기 직후였다.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10년 안에 '빅5'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 것이고,부실덩어리였던 기아차까지 인수해 결국 망할 것이란 비관론이 소위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정 회장의 현대 · 기아차는 올 상반기 매출 60조5623억원,순익 6조2651억원을 올려 사상 최대 실적을 또 갈아치웠다. 글로벌 업체 중 유일하게
[사설] 사이비 CEO論 침묵시킨 정몽구 회장
영업이익률 10%를 넘겼고,10년 전 세계 10위에서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상반기엔 319만대를 팔아 세계 3위 일본 도요타를 29만대, 4위 르노닛산을 24만대 차이로 추격했다. 글로벌 점유율은 8.4%.올 들어 전 세계에서 팔린 신차 12대 중 1대는 현대 · 기아차 마크를 달았다. 올해 판매 목표는 633만대다. 1975년 처음 포니를 만들던 시절의 스승이었던 미쓰비시에서 거꾸로 로열티를 받고 엔진 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3대 메이커의 몰락과 도요타 리콜 사태의 반사이익을 본 것이라고 폄하한다. 경쟁자들이 몸을 추스르고 나면 현대 · 기아차는 강한 역풍을 맞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 회장과 현대차의 성취가 결코 행운도 기적도 아니라고 본다. '오로지 품질'이란 명확한 목표와 현장 제일주의라는 제조업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실천한 결과다. 쏘나타 보닛을 제대로 열지 못한 미국 현지 공장장을 단칼에 경질하고,지금도 매일 새벽 6시면 현장에 출근하는 경영자다.

CEO는 현장보다는 재무에 박학다식하고 영어와 국제금융에 능통해야 한다는 엉터리 CEO관(觀)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계를 지배해왔다. 또 오너경영은 구식이며 전문경영인 체제여야 한다는 식의 관변 · 강단 학자들의 논리가 판을 친 게 국내 경영환경이었다. 국민연금이 2008년에 이어 올해 현대차 주총에서 정 회장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도 그런 오도된 관념의 결과였다. 법원이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규정상 표결이었다지만 실로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정 회장이 현대 · 기아차를 이끈 지난 10여년간 현대차 주가는 19배,기아차는 11배나 뛰었다. 국민연금은 어리석게도 최근 2년간 현대차 지분을 오히려 줄였다. 자타가 공인한다는 경영학자와 소위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지금 말이 없다. 정 회장이 시대적 착각과 오류들을 모두 바로잡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대 · 기아차의 장밋빛 미래를 공언할 수는 없다. 더욱 치열한 글로벌화가 필요하고 경쟁자들의 역공에도 대비해야 한다. 오늘날 성공이 있기까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이 있었음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유행병 같은 금융기술이 아니라 기름때 젖은 부품을 좋아하고,주가 차트 대신 제조현장의 소중함을 일깨운 CEO가 현대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