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통시장에 전방위로 규제와 공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매서운 칼바람에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작 엎드려 있다. 겨냥하는 타깃이 대기업인 탓이다. 명분은 물론 중소상인 보호다. 이 바람에 국내 유통시장은 소비자들의 기호와 인구구조 변화 등에 발맞춰 다양한 업태가 탄생할 기회마저 봉쇄당하고 있다.

정부의 포문은 지난해 말 열렸다. '유통산업발전법'과 '대 · 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을 개정,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발목을 꽉 붙들어맸다. 재래시장과 상점가가 오밀조밀 모인 '전통상업구역'의 반경 500m 이내에는 대형 소매점들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았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정토론회에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단축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이 하반기에 문을 여는 데 이어 전국 13곳에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을 신설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철옹성 같은 약품 관련 규제도 이제서야 풀렸다. 박카스 까스명수 안티푸라민 파스 등 48개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슈퍼 편의점 대형마트와 같은 소매점에서 팔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동안 약사들의 반대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온 보건복지부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를 개정한 것이다.

정부가 유통시장을 마구잡이로 규제하자 맨 먼저 드러난 결과는 다양한 유통업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것이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그렇다 치고 이제 막 싹이 돋으려는 SSM은 제자리 걸음이다. 미국 · 일본 · 유럽의 대도시 길거리와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드러그스토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의약품을 약국이 독점해온 탓이다. CJ올리브영과 같은 업태가 있다고는 하지만,'반쪽'에 불과하다. '드러그'가 빠지고 미용 · 건강 관련 상품만 잔뜩 갖다놓은 까닭이다.

드러그스토어 업태 하나만 보더라도 시장 규모가 미국은 2037억달러(215조원 · 2008년),일본은 5조4430억엔(73조원 · 2009년)에 이른다. 새로운 업태가 등장하면 소비자들은 호기심에 지갑을 열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교수는 '상업'을 '싫증나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본 유통기업들은 백화점과 양판점에 싫증난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균일가 점포인 '다이소',패스트패션 '유니클로',가격파괴 남성복 '아오야마' 등의 신업태를 양산해냈다. 이들 전문점 체인은 2000년대 이후 일본 유통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유통시장 규제는 내수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유통업계 1등의 지위를 누리는 롯데는 사실상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백화점 대형마트 SSM 편의점 홈쇼핑 등의 유통업태를 모두 벌여놓은 상태에서 정부가 앞장서 2,3등 업체들의 추격을 막아주고 있어서다.

한 유통기업 대표는 "중소상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후발주자들의 발목만 잡는 규제를 양산해내는 정부 처사가 한심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형마트 심야영업시간을 제한,열대야를 피해 쇼핑하는 즐거움마저 정부가 빼앗을 권리가 있는 지 답답하기만 한 여름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경제학 박사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