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 보인다. 양파요 고구마 줄기다. 이미 드러난 은진수 전 감사위원,김종창 전 금감원장,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폭로전에 들어간 국회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 박지원 김진표 전 · 현 원내대표의 연루설을 제기했고,민주당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김두우 청와대 기획실장 등 최측근의 실명을 거명하고 있다. 양당 모두가 실로 뻔뻔한 책임 떠넘기기다. 언제부터인지 정치인은 더러울수록 더 큰소리로 정치탄압을 외쳐오지 않았나.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선제공격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진 지난 13년간 누적돼온 온갖 비리 · 특혜 · 은폐 · 공모 · 배임의 결정판이다. 어느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특권계층 모두와 정부와 정치가 관여한 거대한 부패 덩어리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엊그제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저축은행 사태를 전 · 현 정권 측근들과 토착세력의 합작 비리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시중에는 벌써 몸통과 깃털로 구분된 명단까지 돌고 있다. 저축은행 관련 구설수에 오른 정치인도 십수명에 달한다.

우리는 시중에 도는 루머가 모두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고의적인 폭로와 비방도 상당수 섞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축은행과 지역 정치인 간의 유착은 금융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10년 전에조차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저축은행(상호신용금고) 퇴출이 은행보다 더 어렵다고 기자들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저축은행마다 지역 국회의원 3~4명이 달라붙어 있어 퇴출 저지 압력이 쏟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니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해명한 '오만 군데 압력'이 단순히 금감원의 감사무마 청탁뿐이었을 리는 없다.

국민들은 이제 개탄 수준을 넘어 일종의 아노미적 심리공황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해법은 오로지 대통령의 결단뿐이다. 13년 묵은 적폐와 비리를 뿌리 뽑는 데 남은 임기를 걸어야 한다. 어쩌면 정치권 전부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부패와 싸우는 동안은 국민들도 대통령 편이 될 것이다. 그것만 이뤄내도 대통령은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