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주는 감동은 여러 가지다. 선과 색채에서 비롯되는 황홀함도 있고,형상이 던지는 놀라움도 있다.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을 되찾거나 가슴 깊이 묻어뒀던 옛 상처와 마주 서게 만들기도 한다. 보이는 것에 상관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게 하는 것도 그림의 힘이다.

장욱진 화백(1917~1990)의 그림은 우리를 자연과 동심의 세상으로 초대한다. 집 나무 소 개 오리 까치 등이 정겹게 어우러진 화면은 얼핏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어수룩해 보인다. 구도와 명암은 무시되고,집은 나무보다 작거나 나무 위에 얹혀 있고,사람은 보일 듯 말 듯하다.

작품에 따라 형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꽉 찬 것,뭔가에 쫓기거나 정신 없이 바쁜 것,완벽하려 애쓴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덕경 속 '대교약졸(大巧若拙 ·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서툰 듯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다)'이란 말처럼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그림은 실로 평화롭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대신 사물의 본질만 담아 단순화시킨 형상과 여기저기 비어있는 화면,사람이건 동물이건 무심한 듯 마냥 자유로운 모습은 가슴을 짓누르는 현실의 온갖 속박과 두려움,집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

뿐이랴.작은 집이나 허름한 원두막에 들어 앉아 유유자적하는 선비,앞발을 쳐든 개와 뒤뚱거리는 오리,산과 강에 떠오른 빨간 해의 단촐하고 유머러스한 형상은 자신도 모르는 새 웃게 만든다.

14일부터 2월2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이어지는 '장욱진 20주기 회고전'은 작가의 이런 작품 세계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개인 소장품이 대부분이라 좀처럼 보기 힘든 초기작(1937~1962)부터 수묵화풍의 유화로 관념의 세계를 표현한 수안보 시대(1980~1985)와 말년을 보낸 용인신갈 시대작(1986~1990)까지 망라됐다.

'자화상'도 있고, 커다란 가로수 아래로 가족과 개 황소가 줄지어 걸어가는 광경을 그린 '가로수',소나무 사이 작은 집과 넓은 마당을 담은 '강변 풍경',1990년 타계하기 전에 그린 '밤과 노인' 등도 포함됐다. '모든 사물을 데면데면 보지 말고 친절하게 보라'고 했다는 그가 남긴 자그마한 그림들은 크고 화려한 것들만 중시되는 세상에서 작고 소박한 것,절제되고 비워진 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할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