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만기날 장 막판에 주가가 무려 50포인트나 빠진 소위 '옵션쇼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정부와 한국거래소 측은 차익거래 잔고 모니터링 강화,사후증거금 적용을 받는 적격투자가 요건 강화, 파생상품 포지션 한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제도개선안을 이미 내놓은 데 이어 만기일 결제가격 산정방식을 어떻게 개선할지 등의 문제를 놓고 추가 논의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옵션쇼크 이후 진행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의 전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옵션쇼크는 예견된 것이었고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옵션 만기일 오후 2시50분부터 3시까지의 10분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주가조작이 가장 쉽고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마(魔)의 시간대'라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선물만기까지 겹치는 날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프로그램 매매와 연계된 현물주식이 이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매수 또는 매도되면서 종가가 널뛰기를 하는데 이런 일은 이번 말고도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동시호가 결과 주가가 급등락하지 않아도 주가조작의 흔적이 보이는 사례 역시 많다. 옵션 결제기준이 되는 코스피200지수가 거의 정확하게 옵션 행사가격과 일치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날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이때 동시호가 10분간 큰 일 없이 끝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손과 기관으로 대표되는 옵션 매도자들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지수에서 종가가 '관리'됐다고 의심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옵션 만기일 동시호가 때 최종 결제지수가 그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동안 당국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만약 당국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이고,몰랐다면 감독 당국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당국은 현재 옵션쇼크의 진범이 누구인지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보면 그 원인은 금융당국이 제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옵션쇼크 재발 방지 논의가 증권사 기관투자가 등 철저히 관련 업계 위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옵션을 매수하는 개인투자자 보호에 대해서는 정부도,업계도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이번 옵션쇼크로 큰 손실을 입은 대상이 주로 옵션을 매도했던 기관이었고 기관투자가의 대규모 손실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소 기관과 큰손들의 절묘한 지수관리 결과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때는 팔짱만 끼고 있던 당국이 기관투자가들이 큰 손실을 입자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는 결코 보기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당국은 차제에 옵션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투자자 보호대책도 반드시 함께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가 급등락 방지책뿐 아니라 그 누군가에 의한 지수조작 가능성을 아예 사전에 봉쇄하는 근본적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거래소와 업계 역시 우리 파생상품 시장이 세계 1위에 오른 것은 시장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든 수많은 개인투자자들 덕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개인들을 파생상품시장의 유동성만 채워주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시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