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지내는 한 친구는 요즘 주변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년전쯤 2억원에 달하는 은행대출까지 얻어가며 과감히 강남 요지의 급매물 아파트를 사들였는데 집값이 엄청나게 뛰어오른 까닭이다.

6억원을 조금 웃도는 가격에 매입했던 아파트 시세가 지금은 1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니 4억원에 이르는 거금을 한꺼번에 벌어들인 셈이다.

빚을 얻어 투자를 하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소위 레버리지(지렛대)효과를 얻는 결과로 연결됐으니 부러움을 사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4억원이라면 월급쟁이가 평생 허리띠 졸라가며 저축해도 모으기 불가능한 금액 아닌가.

하지만 한꺼풀을 벗기고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형상 보유자산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생활수준, 삶의 질은 대폭 후퇴한 까닭이다.

그는 연봉이 5천만원 정도이지만 매월 손에 쥐는 순수입액은 3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원금은 전혀 상환하지 않는데도 은행이자로만 100만원씩 꼬박꼬박 나가야 한다며 이는 보통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 아이들 사교육비까지 내놓고 나면 생활수준은 그야말로 바닥을 헤맨다는 게 그의 푸념이다.

가족 외식을 끊은 것은 물론 연극 영화 관람조차 마음놓고 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오죽했으면 "힘들게 일해 이자 갚느라 급급하다 보니 마치 집의 노예,은행의 노예로 전락한 느낌"이라는 말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자산이 크게 늘어난 데서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으니 그래도 낫다.

정말 처량한 것은 아직 집 한칸 없는 무주택자들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끼며 알뜰살뜰 살아왔지만 늘어나는 저축액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비하면 뱁새가 황새를 좇는 격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대출을 왕창 얻어 집을 사려 해도 갚을 길이 막막하니 허리띠를 더 졸라매겠다는 결심이나 해야 하는 게 대부분 서민들의 처지다.

삶의 질을 찾겠다는 희망은 더 오랜 기간 접어둬야 할 수밖에 없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높아만 간다.

그런데도 집값 앙등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암담하다.

지난달에만 해도 집값이 3년여만에 최대폭으로 올랐고 한달사이 10%나 폭등한 지역까지 있다고 한다.

그에 맞춰 주택담보대출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은행에서 빚을 얻어 집을 사거나 평수를 늘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출을 얻는 그 순간부터 삶의 질 역시 함께 담보로 잡히지 않으면 안된다.

한정된 시간을 살다가야 하는 게 인생인데 귀중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집을 마련하고 빚을 갚는데 소진한데서야 어찌 그걸 잘된 삶이요,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집 하나 때문에 인생 전체가 완전히 구겨지는 꼴이니 정말 이처럼 서글픈 일도 없다.

더구나 집값이 급등한다 해서 나라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품이 꺼질 경우 심각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그런데도 무능한 정부, 시장을 모르는 헛다리 정책 때문에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국민들은 일상 속의 조그만 여유까지 빼앗기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에서 이를 보상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