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에 있어서 그나마 숨통을 터주는 조치들이 마련됐다. 기업이 원할 때 의결권(議決權) 없는 우선주 등으로 바꿀 수 있는 강제 전환·상환부 주식과 경영권 방어에 필수적인 사안에 대해선 의결권에 제한을 둘 수 있는 의결권 제한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공개 및 시장제도 개선방안'이 지난 23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확정된 것이다.

이번 방안들은 지난 4월 법무부가 공개했던 상법 개정안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기업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자기지분이 낮은 기업들의 경우 강제 전환·상환부 주식이나 의결권 제한 주식을 발행함으로써 적대적 M&A 위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방적 조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는 기업들의 경영권 우려를 해소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이미 외국인 지분이 절반 이상을 넘어서고 회사 보유지분이 낮은 기업들로선 특히 그렇다. 차등의결권 제도나 황금주, 기업들이 주식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옵션부 주식 등 보다 핵심적인 방어수단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적대적 M&A 자체가 문제라서가 아니다. 지분분산이 잘된 우량기업 등에 대한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는 갈수록 위협적인데 반해 해당 기업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게 지금의 실정이다. 국가기간분야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 같은 황당한 규제에다 발행주식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정 등에 따른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왜 기업들이 적극 투자에 나서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일부 정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 인식, 국민여론 등을 들먹이지만 그것은 전혀 설득력 없는 소리다. 미국에서는 차등의결권,포이즌 필,외국인투자자 사전 승인,유럽에서는 차등의결권,외국인투자 사전승인,의무공개매수제에다 황금주의 부분 도입 등 다 나름대로 적대적 M&A 방어수단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방어수단들을 보완하고 있다.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경영권 위협의 실상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파장 등을 직시한다면 정부의 보다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