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지적 노력과 신께서 만든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삶의 고통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주는 천사들입니다. 이 천사들은 저를 다독거려주고 강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무자비할 정도로 엄합니다.' '너희들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둘째의 글씨체가 조금 좋아졌고 문리도 향상되었는데 나이가 드는 덕인지 열심히 공부하는 덕인지 모르겠구나.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부지런히 책을 읽는데 힘쓰거라.보통집안 사람보다 100배 더 열심히 노력해야만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앞의 것은 스위스 공대에 재학중이던 아인슈타인이 어머니에게,뒤의 것은 귀양살이중이던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다. 둘 다 얼마나 절절한지 지금도 읽는 사람을 숙연해지게 만든다. 편지엔 이렇게 힘이 있다. 정성 들여 쓴 편지는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열고,지쳐 쓰려지려는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단 몇 줄의 내용이라도 손으로 직접 써넣은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 한 장은 1년 내내 소식 없어 서운하던 심정을 한순간에 녹인다. 솔직하게 잘못을 비는 편지는 끊어진 사랑을 잇고,따뜻한 축하의 메시지는 라이벌을 친구로 바꾸고,작은 일에 대한 감사의 편지는 든든한 인맥을 이끌어낸다. 아무리 그래도 번거롭고 귀찮고 돈이 들어서일까. 편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그 결과 국민 한 사람의 연간 우편물 이용량이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소포 광고물 고지서 등을 다 합쳐도 2004년 기준 110.5통으로 미국 647통의 17%,일본 202.5통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새벽 두세 시에도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세상에서 편지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쓰는 건 물론 우표를 사서 붙이고 우체통을 찾아 넣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꼭꼭 봉해진 봉투나 겹겹이 쌓인 소포를 뜯을 때의 설레임은 e메일이나 미니홈피 방명록을 열 때와 비교할 수 없다. 정성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 까닭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