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인형의 창안자인 루스 핸들러(Ruth Handler)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핸들러가 바비를 내놓은 건 1959년.2차대전 이후 베이비붐에 따른 완구시장 성장에 주목하던 중 딸 바버라가 종이인형에 옷을 갈아입히며 어른놀이를 하는 걸 보고 고안해냈다고 한다. 커다란 눈에 금발머리,볼록한 가슴과 늘씬한 다리의 8등신 미인으로 태어난 바비는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로 변모돼 왔다. 40여년간 가진 직업만 70가지가 넘을 정도.65년 우주비행사가 됐고 70년대 외과의사 운동선수를 거쳐 80년대엔 사업가로 변신했다. 90년대초엔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90년대 말부터는 TV드라마 'X파일'의 주인공 스컬리가 되는가 하면 NASCAR(세계 자동차경주협회) 회원이나 골프선수로 활약한다. 직업과 여성상이 달라진 데 따라 얼굴모습도 초기의 눈을 내리깐 다소곳한 형태에서 67년 정면을 바라보고 77년엔 밝고 씩씩하게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80년부터 세계 각국 바비가 태어나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엔 한국바비도 탄생됐다. 바비인형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용기와 자신감,능력으로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성장기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었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섹시한 몸매를 강조,외모 중심의 잘못된 여성관을 심거나 얼굴 작고 늘씬한 서구형만 미인이라는 왜곡된 미의식을 조장한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코카콜라 맥도날드햄버거와 함께 미국의 3대 문화침략 도구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이란에선 지난 3월 교육부 산하 아동·청년 지능개발연구원이 민족 정체성을 확보한다며 바비와 크기는 같지만 통통한 데다 긴셔츠 긴바지를 입고 머리에 차도르를 두른 인형 '사라'를 내놨다. 전자게임등 새로운 놀이의 확산으로 세계 완구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지금도 바비인형은 연간 10억개씩 팔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바비 애비뉴가 만들어질 만큼 인기를 누린다. 눈 크고 다리 긴 바비를 대신할 우리 인형은 언제쯤이나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