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마지막 잎새'를 부르고 요절한 가수 배호(1942∼71)의 노래비가 그의 회갑(4월24일)을 앞두고 엊그제 장지인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신세계 공원묘지에 세워졌다.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이 성금을 모아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노래비에는 배씨의 데뷔곡인 '두메산골'의 가사가 새겨졌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너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도라지 꽃피던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풀피리 불며 불며 노래하면서/너와 살련다." 배호가 대중 스타로 우뚝 올라선 것은 67년 초 내놓은 '돌아가는 삼각지'가 빅히트해서였다. 이 노래는 5개월 연속 '방송 인기가요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고,이후 발표된 '누가 울어'등 40여 곡도 연속 히트했다. 배호를 얘기할 때는 으레 '불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찌든 가정형편으로 학교교육은커녕 가수생활 내내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병마와 싸워야 했다. 생활을 꾸리기 위해 노래를 불렀지만 타고난 그의 음악성은 금세 장안의 화제가 됐다. 신들린 듯 드럼을 치고 샹송 칸초네 팝송을 넘나들며 열창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호가 아직도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남성미 넘치는 저음,부드럽고 달콤한 중음,솟구치며 날카로운 고음을 자유자재로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 때문일 게다. 노래를 사랑했던 그의 순수한 마음 역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배호는 5년여의 짧은 가수생활 동안 만성신부전증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대중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대위에서 쓰러져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어 온 그는,장충체육관 공연 도중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2절도 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무대를 떠나야 했다. 무릇 대중가요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대중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배호의 노래비 제막은 요즘 가수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