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 공법학 / 자유베를린大 교수 > 요즘 독일의 정국은 두가지 문제로 어수선하다. 사민당의 부패·정치헌금 스캔들과,이민법 통과를 둘러싼 여야간 연방상원에서의 공방 때문이다. 이 두가지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치자금 스캔들과 '날치기'로 뒤범벅이 됐던 우리의 정치행태를 연상시킨다. 정치헌금 스캔들은 집권 사민당의 쾰른지부 당료들이 폐기물관리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아 편법으로 썼다는 의혹이다. 누구보다 깨끗하다고 자처해온 사민당으로서는 '사민당,너 마저'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 일로 인해 독일국민들은 스스로를 부패국에 살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야당의 총리후보 슈토이버는 일찌감치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않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고 선언한 것은 의외였다. 우리 같았으면 끝까지,다음 정권까지 물고 늘어졌을 법도 한 문제다. 이는 자기들 쪽에 이미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부패스캔들이 미진하게 마무리된 데다,정치자금 스캔들이 잇따를 우려가 있어 물고 늘어져 봐야 대권을 향한 선거정국에 좋을 게 없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허물도 모른 채 상대방의 약점을 잡았다며 쾌재를 부르며 침소봉대하여 물고 늘어지는 우리 정치행태보다는 현명한 선택같아 보였다. 반면 이민법 통과를 둘러싸고 벌어진 연방상원에서의 해프닝은 점입가경이다. 독일 정치도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을 들키고 만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주었다. 슈토이버는 이번에는 달랐다. 중대한 헌법훼손이라며 격분했다. 헤센주의 99년 선거에서 당시 현안이던 '이중국적 허용법안'을 둘러싼 외국인 배타주의를 이용,총리에 당선된 롤란드 코흐는 격렬한 반대장면을 연출했고,이에 다른 동료들도 가세했다. 기민당 총재인 앙겔라 메르켈은 연방대통령 라우가 이를 인준하면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문제의 발단은 사민·기사 연정을 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표결이 기본법 제51조의 요구와 달리 단일하게 행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민당소속 연방상원의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브란덴부르크의 연정파트너인 내무장관 쉔봄(기민당)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자,브란덴부르크주 총리 만프레트 슈톨페(사민당)에게 재차 의견을 물은 후 곧바로 브란덴부르크주의 입장을 찬성으로 처리,새 이민법의 통과를 선포했다. 코흐 등 야당은 베를린 시장인 보베라이트에게 베를린에 대한 '특별재정지원'이란 당근을 얻기 위해 칼자루를 무리하게 휘두른 것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우리 같았으면 야당이 의사당을 점거하고 의장을 잡아 두는 가운데 여당이 전격적으로 회의장을 옮겨 법안을 통과시키는 날치기를 했음직한 일이었는데,그나마 연방상원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야당의 퇴장 사태는 있었을지라도,최소한 법안통과의 의례를 갖춘 것이 가상했다. 그런데 곧바로 이 모든 소동이 실은 야당의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는,기민당 소속 사알란트 총리 뮐러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정치는 연극'이란 조롱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치권 전반이 희화화되고 연방상원과 상원의장이란 최고공직이 힐난의 대상이 됐을 뿐 아니라,여야 모두로부터 존경 받는 연방대통령이 서명여부와 관련한 압력을 받게 되는,독일인들의 양식에 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중에 뮐러가 자신의 발언이 곡해됐음을 해명했지만,일이 벌어지자 곧바로 TV에 그 소동의 장본인들이 출연해 직접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래 정치는 원래 연극이다. 다만 그 연극의 내용과 질이 문제다'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떤가. '희망을 주는 정치'라는 말만큼 현실을 호도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정치는 구제불능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국민경선이란 새로운 실험을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흥미를 끄는데 성공한 여당의 선택이 여론조사에서 여권후보의 지지도를 높인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 결과 야당조차 혁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당 후보들 사이에 색깔논쟁을 가지고 공멸의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은 어리석고 또 한심한 일이다. joonh200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