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학 교수. 국제대학원장 > 나라 안팎의 경제동향이 심상치 않다. 미국 일본 유로지역 등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이 당초보다 낮춰 잡히고 있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와 터키가 경제파탄의 벼랑 끝에 몰리고 있어 97년 동아시아,98년 러시아,99년 브라질에 이어 다시 신흥경제국들의 위기가 도래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국내경제 사정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환란극복을 성급히 자축하고,얼마전까지 기업실사조사 결과가 어떠니,소비자 체감지수가 어떠니 떠들며 분위기 잡던 정부 고위직 나팔수들도 숨죽이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산업생산증가율이 98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다소 늘고 있는 도소매 판매실적을 제외하면,8개월째 감소하고 있는 기업설비투자,안팔려 쌓이는 상품재고,부진한 건설수주 등 전반적으로 불황의 그늘이 넓어지고 있다. 경제가 잘 나갈 때 정부정책의 공을 내세우던 관료들은 경제난국의 책임을 해외로 돌리는 버릇이 있다. 사실 높은 수출의존도에 비춰 무리한 얘기는 아니다. 전세계에서 PC의 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서자,반도체 수요 역시 격감한 충격의 여파가 한국을 강타했다. 한국의 주력수출품목 중에서 조선과 자동차만 전년동기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반도체 섬유 컴퓨터 석유화학 철강 모두 줄고 있다. 수출보다 수입의 감소폭이 더 커 경상수지는 그나마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나라 경제가 왜 어려운가. 물론 글로벌화의 진행으로 주요거래국 간의 상호의존관계와 경기동시화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한 쾌에 꿰인 북어처럼 줄줄 엮여 있는 세계속의 개별국가 경제는 한쪽이 잘 풀리면 다른쪽도 잘 나가고,한쪽이 골병들면 덩달아 다른쪽도 시름시름 앓게 된다. 한국이 환란탈출이 용이했던 것은 미국 등 선진경제의 호황 덕이 컸다. 환란 이후 더욱 깊어진 대외의존관계의 역순환을 이제 맛보고 있다. 순환고리를 차단한답시고 반세계화 데모대의 외침을 따라가면 북한처럼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내수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중국ㆍ동남아 지역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심화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정부주변 경제원리의 혼돈이다. 경제문제란 무엇인가,쓸 곳은 많은데 물자가 부족하니까 물자를 많이 만들고 아껴 쓰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던가. 요즘 우리는 곳간 채우기보다 퍼내 먹는 재미에 취해 있다. 퍼내고도 고갈되지 않는 곳간은 없다. 가계의 경우 수입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몇푼이라도 저축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다. 번영하는 기업은 현금흐름에 주의를 기울여 사업해 성공한 결과이고,부실기업은 무리한 탓이다. 국가재정도 궁극적으로는 자원제약의 틀 속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는 나눠먹기식 사고방식을 확산시키는 정당과 개별 부처들의 사업 계획을 통제 조정하는 기능의 약화에 있다. 예컨대 주5일 근무제가 생산성 증가에 이바지한다고 한다. 그러면 주4일,주3일은 어떤가. 프랑스는 주35시간 근무제를 추진한다지 않는가. 19세기 초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사상가 생시몽과 샤를 푸리에 등의 꿈이 2백년 묵었다고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자리 나눠갖고 실업을 낮추는 서구의 방식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일 다 따라 해서는 안된다. 간단한 산술만 알면 '임금은 그대로 두고 근무시간만 줄이는 주5일 근무제'는 기업의 생산비 상승을 가져올 뿐임을 안다. 중국 등 경쟁국의 임금과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고립국가로 존립할 수 없다. 개별 정부부처들이 편성하는 각기 다양한 사업계획에 대해 기획예산처가 통제하려 하지만 의약분업의 경우처럼 수입ㆍ지출의 엉터리 추산 때문에 종국에는 과외로 엄청난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선거철을 앞두고 국가재원을 고려치 않는 선심성 사업계획들이 남발되는 조짐이 보인다. 현 상황에서 세계적 불황을 한국만의 호황으로 선회시킬 묘방도 없다. 직업훈련사업,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 등 제한적 확장정책만이 고려될 수 있다. 또 구조조정의 지속,경제개방의 확대,성장잠재력 분야의 인프라 지원 등이 바람직하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