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기업의 책임을 그 누구보다 먼저 강조했다. 경제학자이기 전에 18세기 스코틀랜드 출신 철학가였던 그는 “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강조하면서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기업의 이익은 언제나 소비자 이익 다음이라는 의미다.

초기의 자본주의

애덤 스미스가 기업의 이익보다 소비자 이익을 우선한 이유는 중상주의 경험 때문이다. 중상주의 시절에는 산업과 상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라고 믿는 시각이 만연했다. 이런 관점은 식민지 경쟁으로, 약탈 경쟁을 낳았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점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되는 이익 추구 현상을 활용해 소비자의 이익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라는 <국부론>의 문장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 시대에는 시장 밖에 존재하는 이기적인 투자집단을 알 수 없었다. 투자 이익 극대화를 위해 빵집 주인에게 비용을 줄이고 값싼 재료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1980년대 이전까지 자본주의는 대체로 애덤 스미스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기업들은 부자는 물론 평범한 시민에게도 투자할 기회를 줬고, 기업 임원은 스스로를 주주뿐 아니라 채권자, 협력업체, 직원, 지역사회를 위한 관리인이라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남용

‘남용’이란 무언가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역시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남용되고 있다는 표현이 자주 들리는 이유다. 자본주의는 원래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기업 리더들은 개인적인 이익보다 더 큰 가치 실현을 위한 관리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관점은 도리어 반자본주의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란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하나의 기조로 변모한 탓이다.

오늘날 법의 부재를 틈타 특정 전략을 금지할 때까지 수익을 극대화하는 테크 기업의 행태도 자본주의 남용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메타(옛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같은 테크 기업은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도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보다 이를 사과로 대신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 정보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큰 자산임에도 기업 이익 관점에서만 고민하는 셈이다. 이런 행태는 오늘날 샌드박스 제도를 두드리는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샌드박스 제도의 핵심은 법이나 제도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지만 사회적 이익을 높일 수 있는 비즈니스를 일단 해보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허용하는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전환의 지향점

디지털 전환도 자본주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소비자 이익이 우선시되면서, 기업이 사회의 관리인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를 구상했다.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이 아니라는 의미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디지털 전환 사업이 내부 직원과 외부 이해관계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많은 경우 디지털 전환을 새로운 가치 또는 시장의 창출이 아니라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한다. 근로자를 감소시키는 스마트팩토리 사업은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적으로 환영받을 리 만무하다. 디지털 전환은 소비자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기업 이익은 물론 연관된 모든 이의 이익을 높이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와 기업의 내부 직원, 외부 이해관계자, 정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발전된 기술과 스마트해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결합하면 애덤 스미스의 이상은 구현 가능하다. 세상에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