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는 `ESG 경영`

국내 금융업계가 전담 부서까지 만들며 연초부터 이 ESG 경영에 적극적인데요.

CEO의 독주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임원식, 문성필 두 기자가 연속해서 보도합니다.

<기자>

하나금융지주를 이끌 수장으로, 또 한 번 선택을 받은 김정태 회장.

지난 2012년 회장 자리에 오른 뒤 이미 세 번이나 연임을 했지만 하나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또 다시 김 회장을 지목했습니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왔고 실적과 능력도 출중하다는 이유에섭니다.

만 70세를 넘으면 회장이 될 수 없다는 내부 규범을 고려하면 김 회장의 올해 나이는 만 69세로, 연임을 하더라도 임기는 고작 1년에 불과합니다.

1년 뒤 회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임기를 연장해야 하는 지 뒷말이 무성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오는 26일 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의 연임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지주 수장의 장기집권 관행은 비단 김 회장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난 2014년 CEO 자리에 오른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비롯해 4대 금융지주 수장들 모두 하나 같이 연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연임의 관행은 선대 회장들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은 4연임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3연임을 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 펀드 사태나 채용 비리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재판까지 받아도 이처럼 오랜 기간 연임이 가능했던 건 실적과 조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과거 고도성장시절의 경영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투명, 책임 경영이나 친소비자 경영은 뒷전이다보니 DLF 사태를 비롯한 펀드부터 보험 등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회장의 제왕적 권력을 감시, 견제해야 할 이사회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주요 투자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주총에서 손태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강행한 우리금융 사례나 최근 3년 새 금융지주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들 가운데 무려 99%가 가결되며 거수기로 전락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비록 외형은 커졌어도 지배구조는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탓에 10여 년 전 회장 자리를 둘러싼 파벌 간 갈등과 내분이 법정 다툼으로 번졌던 신한금융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 : 누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고 싶어 하겠어요? CEO나 최고위 경영진에 대한 거버넌스(지배구조)가 개선되기 매우 힘든 구조인데 사실 (ESG 경영에서) 이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선) 결국 외부에서의 목소리가 1번이고 경영자들이 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투자자들이 움직임을 보여줘야 해요.]

[기자 스탠딩 : 새해부터 ESG 경영하겠다며 금융업계는 연일 ESG 강화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유독 지배구조 관련해선 사실상 침묵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해외 투자기관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ESG 평가에서 `G` 즉 지배구조 문제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자 7곳 중 6곳의 반대에도 손태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강행했습니다.

당시 손 회장은 DLF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문책경고) 결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이후 국내 한 ESG 평가기관의 자료를 보면 우리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점수는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2020년도 기준 KB금융 A+ / 신한금융지주 A+ / 하나금융지주 A / 우리금융지주 B+)

평가서에서는 해당 점수에 대해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다소 필요하며, 비재무적 리스크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다소 있다고 설명합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는 주주권리 보호, 이사회, 최고경영자, 내부통제 등의 항목으로 평가합니다.

세부 평가 기준은 공개하지 않지만, 최고경영자에 대한 부분은 평가 항목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 때 사외이사 선임으로 홍역을 겪은 하나금융지주 역시 지배구조 점수에서 우리금융지주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나금융도 기관투자자 8곳 중 4곳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사외이사 선임을 밀어부쳤습니다.

글로벌 평가기관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의 ESG 평가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MSCI는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ESG 등급을 BBB로 평가했는데, 이는 전체 7등급 중 4번째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우리금융지주 BBB / 하나금융지주 BBB / KB금융지주 A / 신한금융지주 AA)

문제는 자산운용사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국제 투자자문회사인 러셀 인베스트먼트 조사를 보면 자산운용사들은 지배구조에 대한 비중을 80%나 두고 있습니다.(환경 13%, 사회 5%)

[대기업 ESG 담당자: 최근 많은 기업들이 CEO와 이사회 주관으로 회사의 지속경영이나 ESG 관련 사안을 의사결정하는 회의체나 운영회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런 것들이 거버넌스(G,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ESG 등급을 기준으로 운영하는 자산은 전체 운용자산의 절반 가량인 45조 달러, 우리 돈 5경1,255억 원에 달합니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돼 2030년이면 전체 운용자산의 95%, 2035년이면 99%를 ESG 등급에 따라 운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출처: 도이치뱅크)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해외는) 네거티브 방식이라고 해서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투자군에서 빼는 것이죠. G(지배구조)나 이쪽의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죠.]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보다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는 게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윱니다.
`직업이 회장님`...견제 없는 `나홀로 지배` [지배구조 빠진 금융권 ESG경영]
임원식기자 rya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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