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절, 지중해 사람들이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곳이 있다. 지중해 서쪽 끝 지브롤터해협에 있는 일명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브롤터해협의 고대 명칭이다. 두 기둥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유럽의 이베리아반도 사이 좁은 해협의 남과 북에 솟은 바위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쪽 기둥은 이베리아반도 남단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속해 있는 해발 425m의 지브롤터 바위산이다. 그러나 남쪽 기둥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남겨진 기록이 없다.

그리스신화에서 묘사하듯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곧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다. 배를 저어 더 나아갔다가는 세상 끝의 어둠과 지옥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고대의 진입금지 경고판인 셈이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에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한 것이 대서양(Atlantic Ocean)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단테도 《신곡: 지옥 편》에서 “인간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경계선을 표시해둔 좁다란 해협…”이라고 언급했다.

이렇듯 고대인의 세계관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쪽, 즉 지중해에 국한됐다. 이는 지리적 제한일 뿐 아니라 생각의 한계를 규정하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누구도 그 너머 미지의 공포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브롤터해협을 넘어간 사람들이 연 대항해시대

모두가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 세상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진취적인 해양민족인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은 서부 지중해를 누비면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대서양에 면한 포르투갈, 모로코 해안까지 진출해 도시를 건설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카르타고의 항해가 겸 탐험가 하논이 BC 630년~BC 530년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 아프리카를 거쳐 홍해로 돌아오는 항해를 시도했다고 썼다. 하논은 “카르타고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의 거리만큼 이곳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에서 멀리 떨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말이 맞다면 중앙아프리카의 카메룬 부근까지 내려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하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고대는 물론 폐쇄 사회인 중세까지 감히 지브롤터해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어 지리적·심리적 제약을 돌파하려는 시도가 잇따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모험가들은 경계를 과감하게 뛰어넘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더 이상 진입금지 경고판으로 의식하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1488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92년),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1499년), 브라질에 도착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1500년), 세계 일주에 성공한 페르디난드 마젤란(1521년) 등이 연이어 멀고먼 항해에 성공했다. 이들에게는 실크로드를 타고 전해진 나침반이라는 최신 장비가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란 제약을 돌파하자 지중해 무역과 실크로드 육상무역 대신 대서양 무역이 대세로 떠올랐다. 낙타로 운반하는 육상무역에 비해 해상무역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첨단산업이었다. 당시 최대 교역품인 동남아시아의 향신료를 범선 한 척이 실어 나르면 낙타 1000마리에 싣는 만큼 운송할 수 있었다. 배 10척이 나갔다가 한 척만 무사히 돌아온다 해도 손실을 메우고 남을 만큼 수익성 높은 장사였다.

고대 세계관에서 벗어나 대양을 향해

대항해시대의 모험 정신은 스페인의 국기에도 담겨 있다. 국기 문양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그려져 있다. 기둥에 감겨 있는 두루마리에는 ‘보다 먼 세계로’라는 의미의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카를로스 1세가 좌우명으로 삼은 것이다. 과거 ‘헤라클레스의 기둥에서 더 나아갈 수 없다’라는 경고 문구에서 부정을 뜻하는 ‘논(NON)’을 뺀 것이다. 약 800년간의 이슬람 지배와 지중해에 갇힌 고대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대양을 향해 나아간다는 진취적 기상을 담은 것이다.

16~18세기는 절대왕정 국가들의 해양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다. 먼저 포르투갈, 스페인이 16세기를 지배했다. 17세기는 네덜란드, 18세기는 영국의 시대였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격언이 그대로 실현됐다.

오늘날에도 지브롤터해협, 즉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군사적 요충지다. 그곳은 고대 페니키아, 로마, 이슬람 등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때 종전 조건으로 영국에 할양돼 오늘에 이르렀다. 지브롤터해협은 여의도 3분의 2 면적에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하다. 아주 작은 땅이지만 이집트 수에즈운하, 터키 보스포루스해협과 더불어 지중해 3대 요충지로 꼽힌다. 영국은 지브롤터에 스페인 함대 전체를 능가하는 해군 전력을 배치해 18세기 해양 패권을 움켜쥐는 발판으로 삼았다.

스페인에는 지금까지 지브롤터가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스페인 프랑코 총통에게 참전하면 지브롤터를 되찾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참전하지 않았다. 만약 스페인이 나치를 도와 참전했다면 패전 이후 더욱 불리한 입장에 처했을 것이다. 지금도 지브롤터의 주민 대다수가 영국령으로 남기를 원해 스페인은 애만 태우고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서양이 대항해시대를 연 것과 달리 화약 나침반 종이 등 앞선 기술을 가진 동양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② 1875년 영국의 수에즈 운하 지배권 획득, 1914년 미국의 파나마 운하 개통, 2013년 중국의 니카라과 운하 건설 추진 등 강대국들이 해협이나 운하를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③ 국경 등 한계를 넘어 더 넓은 미지의 세계로 탐험에 나서려면 대한민국은 어디를 어떻게 도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