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 폭락으로 불거진 ‘9월 위기설’…과연 발생할까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지난 3월 중순 이후 지칠 줄 모르고 상승했던 미국 주가가 현지 시간으로 9월 3일 이후 이틀 연속 폭락한 것을 계기로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테슬라,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를 비롯한 이른바 슈퍼 스톡인 기술주에 낀 거품이 심하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에서는 주가 앞날과 관련해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하나는 경기와 기업실적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제2 닷컴 버블 붕괴론’과, 다른 하나는 지난 2분기와 마찬가지로 3분기 경기와 기업실적이 따라오면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어느 시각으로 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현재 주가 수준부터 평가해 보면 주가수익비율(Price Earning Ratio, PER), 주가순자산비율(Price to Book value Ratio, PBR)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고평가’됐다. 미국 상장기업의 PER는 평균 22배로 적정수준인 16∼17배를 훨씬 넘는다.

현재 주가 수준이 전통적인 평가지표로 설명되지 않다보니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이 주가매출비율(Price Sales Ratio, PSR)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PER, PBR과 마찬가지로 과거 실적을 기준으로 한 평가지표라는 점과, 최근처럼 매출과 이익 간 괴리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적정 주가 판단을 오히려 왜곡시킬 수 있다.

2009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이 실물경제를 반영(following)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leading)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각국 중앙은행도 자산 효과를 겨냥해 경기회복을 모색하는 통화정책이 상시화되고 있다. 제로(혹은 마이너스) 금리,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뉴 노멀’이라 불리는 이런 주식투자 여건에서는 지금 당장 경기와 기업실적이 뒤따라주지 않더라도 미래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형의 잠재가치(최고경영자의 꿈과 이상도 포함)가 높게 평가되면 돈이 몰리면서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미국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는 ‘이야기 경제학’으로 정의했다.

주가는 과거 실적이 아니라 미래에 기대되는 수익에 투자한 결과라는 차원에서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고 오히려 더 맞을 수 있다. 월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주가평가지표로는 주가무형자산비율(Price Patent Ratio, PPR)과 꿈대비 주가비율(Price to Dream Ratio, PDR) 등이 있다.

신구 평가지표로 미국의 슈퍼 스톡 종목의 적정 주가 수준을 따져 앞날을 예상해 보면 구평가지표로는 ‘하락’, 신평가지표로는 ‘상승’이라는 엇갈린 결론이 나온다. 따져봐야 할 것은 구평가지표의 주가 하락 근거인 경기와 기업실적 부진, 신평가지표의 주가 상승 근거인 미래 잠재가치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3분기 성장률과 기업실적 발표가 없는 9월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려울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담당해온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Fed는 설립 이후 ‘세계중앙은행’이라 불릴 만큼 신뢰를 얻는 데에는 ‘설립 목적’과 ‘회의 주기’와 같은 기본과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첫 시련이 닥친 때는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이다. 미국에서는 발생할 수 없다고 봤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크게 당황한 Fed는 설립 이후 연 8회 열리는 정례회의 주기를 어기고 첫 임시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양적완화를 추진했다. 2012년에는 설립 목적도 전통적인 ‘물가 안정’에 ‘고통 창출’을 추가했다.

올들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출구전략을 추진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통화정책 여건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는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Fed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증시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융위기 때보다 더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꺼내 들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한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 빅 스텝 방식을 부활해 제로(0) 수준까지 내렸다. 양적완화는 매입대상에 정크 본드(코로나 사태로 투기 등급으로 떨어진 회사채)까지 포함시켜 중앙은행의 핵심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까지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무제한 통화공급 방침을 추진했다. 한마디로 코로나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모든 위기는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그리고 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면 자연스럽게 실물경기가 살아나는 점을 고려해 유동성 위기와 실물경기 위기로 압축시키는 시각도 있다. 위기 극복도 이 단계를 따라야 한다. 양적완화는 유동성 위기를 수습하고, 제로 금리는 통화정책 추진경로(유동성 공급→금리 하락→총수요 증가→실물경기 회복) 상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문제는 1990년대 이후 발생한 유럽통화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는 단계별로 이행이 순조롭지 못하고 코로나 위기는 ‘절연(insulation)’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주된 이유는 위기의 성격이 다중 복합 대형위기인 데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됐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출구전략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져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Fed가 통화정책의 최단기 시차인 9개월도 채 안 되는 지난 6월 중순 이후부터 나타난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에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스인플레이션이란 물가 상승률이 계속 오르기는 하지만 그 상승률이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기 순환 면에서 이 현상을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성장률과 물가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져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되는 것이 관례다.
기술주 폭락으로 불거진 ‘9월 위기설’…과연 발생할까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Fed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된 이후 닥칠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무제한 통화공급 기조를 지속해 나가면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더 심해진다. 실물경기도 과도한 금융지원이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는 ‘코브라 효과’가 우려돼 오히려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요요 현상’ 때문에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해 나가는 경우보다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지난 3월 임시회의 이후 무제한 통화공급으로 디스인플레이션 우려되는 현재 여건에서 Fed의 통화정책도 변화를 줘야 한다. 유동성 위기를 수습한 이후 이제는 더 급해진 시장 기능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실물경기를 조속히 회복시켜야 한다.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난 이후 금리 상한제, 수익률 곡선 통제(YCC), 물가 목표치 상향 조정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내놓은 대안이 ‘평균물가목표제’다.

Fed가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한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1913년 설립 이후 가장 큰 변화라 평가받는 Fed의 목표가 바뀐 2012년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상황에서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하자 물가안정에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해 나갔다. 그 이후 통화정책은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추진해 왔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 만에 같은 상황에 놓이자 이번에는 Fed가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고용 창출을 우선하는 통화정책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시킨 셈이다. Fed의 계획으로는 2021년말까지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물경기가 제 궤도에 이르지 못해 고용창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9월 위기설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기술주 폭락으로 불거진 ‘9월 위기설’…과연 발생할까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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