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과도한 복지는 결국 미래세대에 무거운 짐이 되죠
[사설] 미래 세대의 '한국 탈출'이 걱정된다

서울교육청이 ‘교육기본수당’이란 이름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발표는 여러모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학령기에 정규 초·중·고교로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은 물론 자퇴·퇴학당한 학생에게까지 영수증이 필요 없는 현금을 지급하는 게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등 문제 소지가 많다. 지방자치단체의 월권 행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업무가 여성가족부 소관인데, 제대로 된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교육예산이 이렇게 쓰여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학생은 매년 급감하는 데도 교육예산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게 근본 문제일 것이다. 2015년 614만 명이었던 전국 초·중·고교생은 올해 563만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3년 동안 전국 각 교육청으로 가는 예산은 39조원에서 52조원으로 오히려 급증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내국세의 20.27%를 주도록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인기영합적인 서울교육청의 이 프로그램에 대해 “돈이 남아도니 별일을 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기 성남시도 ‘청년수당 100만원 지급’에 이어 올 들어 아동수당을 소득과 관계없이 100% 지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내년부터는 의료보험과 별도로 100만원 초과분 개인부담 의료비까지 시에서 준다고 한다. 임기 4년짜리 시장의 잇단 복지프로그램이 지속 가능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개편 논의에서도 그런 기류가 보인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안과 더불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운영안까지 논의되는 모양이다. 역시 문제는 늘어나는 ‘혜택’이 가능하도록 누가, 어떻게 ‘부담’한다는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는 확 늘어나지만 보험 재정의 장기건전성은 외면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산 편성을 비롯해 정부의 공공부문 채용 확대 정책도 소요 재정은 뒷전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구별 없는 복지 확대에 교육청까지 가세했다. ‘큰 정부’로의 질주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같은 공적보험도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재정 문제는 ‘나중 문제’가 되고 있다. 미래 세대는 이에 따른 모든 부담을 선선히 질까.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아 나서는 기업처럼 이들도 ‘정나미가 떨어진’ 한국을 등지는 사태가 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한국경제신문 10월1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국가적 복지 프로그램은
사회 형편과 지속가능성 고려해야
부담 커지면 미래세대 나라 떠날 수도


[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과도한 복지는 결국 미래세대에 무거운 짐이 되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통상전쟁이나 관세 높이기만 보면 국가 간 유무형의 국경선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세계는 점점 개방돼가고 있다. 국가 간 장벽도 더욱 낮아지는 것이 세계사의 발전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민족’ ‘민족국가’라는 말이 매우 흥했다. 하지만 현대국가에 이르러 민족이라는 개념은 퇴조해가는 것이 세계사적 흐름이다. 대신 보편적 개념의 시민이 자리 잡게 됐다. 앞으로는 한 국가에 전속된 국민의 개념으로 시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좀 더 보편화될 것이다. 코스모폴리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만큼 개인들은 원하는 도시와 지역을 선택해 살듯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가 된다는 얘기가 된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가는 ‘저출산’의 해법으로 외부 인구 유추가 좀 더 주목받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이미 역량 갖춘 젊은 세대들은 국적 선택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이민 진입이 매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도 젊은 전문가에 대해서는 근래 이민 문호를 크게 넓혀 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외의 좋은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저출산 사회의 국가적 생존법으로 공감대를 넓혀가는 와중이다. 문제는 제3세계의 젊은 세대가 한국을 선택할 것이냐다. 동시에 한국 내부의 경쟁력 저하로 우수 인력이 더 나은 곳을 찾아 해외로 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게 현실적 고민이다.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이 문제에서 결정적 변수다. 세금과 각종 준조세가 그런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형편과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도입되고 있는 온갖 유형의 복지 프로그램을 위한 재원은 결국 사회 성원들이 부담해야 한다. 한번 도입된 복지 프로그램은 쉽게 퇴출되지도 않는다.

서울교육청이 자퇴생 퇴학·제적당한 학생들에게 20만원씩을 주겠다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어디에 쓰는지 전혀 확인도 않은 채 학교 밖의 청소년 전부에게 현금으로 주겠다면 비행 청소년을 유도하는 부작용은 없을까. 학생은 계속 줄어드는 데도 학교 예산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어나니 영 엉뚱한 곳에 나랏돈이 잘못 쓰인다는 비판부터 나오지만, 더 큰 문제점은 이것도 결국 미래 세대 부담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복지 경쟁은 중앙 정부, 지자체 구별도 없다. 교육을 넘어 보육 의료 연금 등의 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성세대의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이 미래세대의 탈(脫)한국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