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 여성 엔지니어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지난 3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 여성 엔지니어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지난 3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3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75t 액체엔진 시험동. 여대생 수십 명이 엔진 연소시험을 준비 중인 한국형 발사체(KSLV-2) 75t 액체엔진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다. 이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잠시 뒤 시험동에서 조금 떨어진 발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학생들 사이에선 탄성이 나왔다. 이곳에선 2013년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발사됐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캠퍼스 항공우주공학과에 다니는 윤채원 씨는 “미국 항공우주회사인 스페이스X와 보잉에 가봤지만 로켓 발사장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여성 엔지니어 아카데미

이 프로그램은 항우연이 공대 여학생을 대상으로 연 ‘항공우주 여성 엔지니어 아카데미’다.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이 행사는 공대 여학생의 항공우주 분야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번 행사에는 항우연에서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하는 임석희 연구원을 비롯해 달탐사에 참여하는 임조령 선임연구원, 천리안 2호를 개발하는 이나영 선임연구원 등 항우연을 대표하는 여성 연구원들이 강연자로 나섰다. 2일 밤에는 ‘선배’인 여성 엔지니어가 여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상담해주는 멘토링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18개 대학에서 30명이 참가했다. 지난 5월18일 페이스북을 통해 모집 공고가 나가자마자 10초 만에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번 행사의 유일한 해외 참가자인 윤씨는 “우주 개발 선진국인 미국도 항공우주 분야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15%도 안 되고 외국인 학생에겐 우주 관련 공모전 참가가 제한될 정도로 항공우주 분야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선배 여성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주 개발 현장을 직접 보면서 꼭 우주탐사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4학년인 김재은 씨는 지난해 항우연이 연 대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선배 여성 엔지니어들과 진로 상담 시간이 포함된 이번 프로그램이 훨씬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이 많은데 엔진기술의 핵심인 열유체 분야 박사학위를 따서 로켓엔진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초 개봉된 영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겨내며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인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흑인 여성 과학자 세 명을 다뤘다. 우주 개발에 뛰어든 지 20년이 갓 넘은 한국도 항공우주 분야는 여성에겐 불모지다. 항우연에 따르면 전체 연구원 795명 중 여성은 63명(8%)에 불과하다.

조광래 항우연 원장은 “여러 분야의 협업이 필요한 항공우주 분야에선 여성의 감수성과 소통 능력이 힘을 발휘할 경우가 많다”며 “여성 인재들이 항공우주 분야에 진출할 기회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