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 언론 공개회. 연합뉴스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 언론 공개회. 연합뉴스
1894년 프랑스군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 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군사법정은 그에게 종신유배형과 군적 박탈을 선고했다. 2주 뒤 육군사관학교 광장에서 공개리에 열린 군적 박탈식. 드레퓌스의 계급장과 단추, 바지 옆줄이 뜯겨나갔다. 강제로 단추를 뜯어내는 것은 당시 인격을 모독하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었다. 에밀 졸라를 비롯한 양심적 지식인 등의 항거로 드레퓌스는 결국 누명을 벗었다. 그의 단추는 인권과 자유의 상징이 됐다.

작은 단추에 투영된 프랑스 근현대 문화
국립중앙박물관이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과 함께 30일부터 상설전시관 1층에서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를 연다. 단추라는 작고 평범해 보이는 소재에 담긴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자리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단추를 중심으로 의복, 회화, 판화, 책, 사진, 공예 등 1800여 건을 소개한다.

전시는 프랑스 복식의 흐름을 조망하는 프롤로그, 18세기, 19세기, 20세기, 에필로그 등 총 5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에선 18세기부터 1950년대까지 유화, 판화, 포스터, 사진 등으로 프랑스 복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유럽에 단추가 처음 들어온 것은 십자군전쟁이 벌어진 13세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기능적 역할은 약해지고 화려한 장식 수단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금, 다이아몬드, 루비 등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단추들은 군주의 위엄을 상징했다. 귀족들도 거금을 들여 경쟁적으로 단추를 주문 제작했다. 16~17세기 여러 차례 내려진 사치 금지령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옷보다 비싼 단추가 등장했을 정도였다.

절대왕정에서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18세기는 ‘단추의 황금기’였다. 초상화, 장르화, 풍자화 등의 세밀화 단추부터 광물, 식물, 동물 등 박물학을 적용한 뷔퐁단추, 수수께끼나 격언, 상징적 문구를 넣은 단추, 프랑스 혁명이나 노예해방 등 신념과 시대상을 반영한 단추까지 온갖 종류의 단추가 등장했다. 18세기 단추는 한편으로 개인과 사회를 담아낸 가장 작은 세계였다. 화려한 궁정문화를 보여주는 금실·비단·보석으로 만든 단추,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의회 의원들의 얼굴을 그린 선동적인 단추도 있다.

19세기의 주제는 ‘시대의 규범이 된 단추’다. 안으로는 산업화와 도시화,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라는 대격변기를 맞이한 당시 프랑스 사회를 단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나폴레옹의 제정 시기 이래 단추는 군복과 같은 제복의 상징으로서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산업혁명에 따른 대량생산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발달했고,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문화적 규범을 단추가 상징했다. 19세기를 휩쓴 댄디즘이나 아르누보 등 새로운 문화사조의 주요한 표현 수단도 단추였다.

단추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19세기였다. 1878년 프랑스에는 3만 명 이상이 단추산업에 고용됐다. 백화점들은 남성복 도록을 갖추고 산업적으로 생산된 온갖 모양과 크기의 단추를 선보였다. 여성 패션에서도 단추는 장갑부터 부츠, 속옷까지 최신 유행에 활용됐다.

20세기에 와서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신체를 억압하던 의복 대신 새로운 형태의 복식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단추는 실루엣을 살리거나 옷의 균형을 잡는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됐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내면과 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체가 되기도 했다.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최초의 프랑스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의상과 단추, 1925년 파리박람회를 계기로 추상적·기하학적 표현으로 기능성과 단순성을 추구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복식과 단추, 코코 샤넬과 함께 1930년대 파리 패션계를 주도한 ‘패션계의 초현실주의자’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의상(사진)과 작품 단추들도 선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시품은 프랑스의 단추 수집가인 로익 알리오(66)가 모은 것이다. 2011년 프랑스 국립문화재위원회는 그의 수집품을 중요 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 전시는 오는 8월15일까지 이어진다. 이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9월9일부터 12월3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성인 9000원, 중·고·대학생 8000원, 초등학생 7000원, 만 65세 이상 5000원.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